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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 과목 화려하면 평가에서 유리? 보통 교과 충실한 이수가 먼저

이수 과목 화려하면 평가에서 유리?

보통 교과  충실한 이수가 먼저 


학생부 종합 전형 서류 평가를 교사들이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모의평가를 제공하는 대학이 많습니다. 대학의 실제 평가 시스템을 들여다볼 수 있고, 제공된 사례를 직접 평가해보면서 고교와 대학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시간이죠.  지난 10일 동국대가 주최한 모의평가에서 참석자들의 이목이 가장 집중된 시간은 경제학과와 AI융합학부에 각각 지원한 네 명의 실제 평가 결과가 공개될 때였습니다. 학생 선택 중심 교육과정이 들어오면서 종합 전형 서류 평가에서도 선택 과목의 비중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원자의 학업 역량과 전공 적합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료이기 때문이죠. 이때 이수 과목이 화려하면 평가에서 유리할 거라는 인식이 많습니다. 특목고에 주로 개설됐던 난도 높은 전문 교과를 일반고에서도 경쟁적으로 편성하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이날 공개된 평가 결과를 보면 이런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일반고 학생들은 보통 교과 안에서 대학 공부에 필요한 일반선택 과목과 진로선택 과목을 충실히 이수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 동국대 모의평가 사례를 통해 살펴봅니다. 

 

취재 정애선 기자 asjung@naeil.com 

도움말 김용진 교사(서울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이재원 책임입학사정관(동국대학교) 

자료 동국대학교 입학처·<학생부 종합 전형 공통 평가 요소 및 항목 개선 연구>

 

 



선택 과목 개설 폭 학교마다 차이  ‘전문 교과’ 경쟁적 개설 지양해야 

 


B학생이 A학생보다 우수하게 평가받은 이유는? 


동국대 컴퓨터공학전공에 지원한 A학생과 B학생은 ‘보통 교과’ 중 수학, 과학 과목인 <확률과 통계> <미적분> <물리학Ⅰ·Ⅱ>를 공통적으로 이수했다. A학생은 여기에 ‘전문 교과’에 해당하는 <프로그래밍> <정보과학> <컴퓨터시스템일반>을 추가적으로 이수했다. 반면 B학생은 전문 교과 과목은 이수하지 않았지만, 보통 교과 중 수학에서 <기하>를, 과학에서 <화학Ⅰ·Ⅱ> <지구과학Ⅰ·Ⅱ>를 좀 더 폭넓게 선택했다는 점이 차이다. 


두 학생 중 서류 평가에서 입학사정관들에게 더 좋은 평가를 받은 학생은 누구일까? 


결과적으로 두 학생 모두 합격하긴 했지만, 더 좋은 평가를 받은 학생은 B다. 이수 과목만 봤을 때 컴퓨터와 관련된 전문 교과 과목을 들은 A학생이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한데 B학생이 더 우수한 평가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A학생이 속한 학교는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다양한 교육과정을 개설한 노력이 돋보인다. 학생은 이를 적극적으로 선택해 이수했다. B학생은 일반적으로 고교에서 선택할 수 있는 보통 교과 중 수학, 과학 과목들을 중심으로 이수했다. A학생의 적극적인 태도는 긍정적이지만, B학생에 비해 보통 교과의 학업 성취, 특히 과학적 소양에 아쉬움이 있었다. 반면 B학생은 컴퓨터공학전공에 필요한 수학적 학습 역량과 과학적 소양을 보통 교과 안에서 충실히 키워왔다.” 
동국대가 밝힌 이유다.  



일반고는 ‘보통 교과’ 내 선택권 확대가 우선 


학생 선택 중심 교육과정이 고교 현장에 적용되면서 학생부 종합 전형 서류 평가의 중심은 ‘선택 과목’으로 무게가 옮겨졌다. 학생의 선택에 따라 고교 3년 동안 이수한 과목 이력이 달라지면서 과거와 달리 전공 공부에 필요한 과목을 충실히 선택해 배웠는지 살펴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과거 특목고 등에서 주로 개설됐던 ‘전문 교과’를 진로선택 과목으로 일반고에서도 개설할 수 있게 했다. 선택 과목이 종합 전형의 주요 평가 요소로 자리매김하면서 일반고에서도 학생들의 우수성을 드러내기 위해 앞다퉈 전문 교과를 개설하는 학교들이 늘었다. 학생들이 소속 학교에 개설되지 않은 과목을 이수할 수 있도록 각 시·도교육청이 지원하는 공동 교육과정에서도 전문 교과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전문 교과 반영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학생 수, 교원 현황 등에 따라 학교마다 선택 과목 개설 폭의 차이가 아직까지는 크기 때문이다. 건국대·경희대·연세대·중앙대·한국외대 등 5개 대학은 공동 연구한 <학생부 종합 전형 공통 평가 요소 및 항목 개선 연구>에서 “새 교육과정 시행에 따라 학교마다 큰 차이를 보이는 전공 관련 심화 과목이나 전문 교과의 반영 여부 등은 신중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고교 유형에 맞춰 일반고는 보통 교과 내에서 일반선택 과목과 진로선택 과목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충실히 이수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 특히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진로선택 과목을 다양하게 개설하려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난도 높은 전문 교과나 심화 과목을 경쟁적으로 개설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서 컴퓨터공학전공에 지원한 두 학생의 사례를 <2023 동국대 학생부 위주 전형 가이드북>에 실은 동국대 이재원 책임입학사정관은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려면 수학적·논리적 사고력을 바탕으로 과학적 소양을 갖춰야 한다. 사고의 구조가 수학과 비슷한 물리학은 모든 공대에서 필요로 하는 과목이다. B학생은 여기에 <기하> 외에도 화학과 지구과학을 이수하는 등 과학적 소양을 폭넓게 키우려고 노력했다. A학생의 경우 전문 교과 이수 이력에서 컴퓨터공학과 관련된 스킬적인 측면의 관심도는 확인할 수 있었지만, 기본이 되는 수학·과학 과목의 이수가 부족했고 성취도도 B학생보다 다소 낮은 편이었다”며 “입학사정관은 과목명에서 이른바 ‘멋짐’이 드러나는 과목을 이수한 것만으로 좋은 평가를 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모의평가 사례로 살펴본  교육과정&이수 과목의 중요성 


지난 10일 동국대에서 진행된 교사 대상 모의평가 사례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비교해보자. 


동국대의 학생부 종합 전형 서류 평가 항목은 크게 ‘학업 역량, 전공 적합성, 인성 및 사회성’으로 구분된다. 이 중 지원자의 선택 과목 관련 내용이 주되게 반영되는 항목은 학업 역량과 전공 적합성이다. 특히 전공 적합성에서는 전공 관련 교과목의 학업 이수 내용과 성취도, 전공 관련 진로선택 과목의 탐구 과정과 노력 등을 주로 살핀다. 


이날 모의평가에서는 인문 계열 모집 단위인 경제학과와 자연 계열 모집 단위인 AI융합학부에 지원한 각각 네 명의 일반고 학생 사례가 제시됐다. 



<국제경제Ⅰ>보다 <미적분> 이수자가 더 높은 평가 


동국대가 제시한 경제학과의 전공 관련 교과목은 수학과 영어를 비롯해 <경제> <정치와 법>이다. 수식 및 그래프 이해 능력, 분석적·논리적인 사고력이 중요하고, 시사 이슈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경제학과에 합격한 지원자 A, B, C 중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은 학생은 ‘지원자 B’였다. 우선 수학 교과 일반선택 과목 중 <확률과 통계> 외에도 <미적분>까지 도전한 점이 다른 지원자들과 가장 구분된다. 전공 공부의 핵심인 <미적분>을 선택 이수하려는 노력이 높이 평가됐다. 사회 교과 일반선택 과목으로 <경제>를 이수했고, 진로선택 과목으로 <경제수학> 외에도 <수학과제탐구> <사회문제탐구>까지 다양하게 이수한 점도 특징적이다. 반면 전문 교과 과목은 이수하지 않았다. 전공 관련 교과 평균 등급은 2.66이었다. 



‘지원자 A’는 일반선택 과목으로 <확률과 통계>


<경제> <정치와 법>을 이수했지만, <미적분>은 이수하지 않았다. 대학에 제공된 교육과정 편제표와 학생부에서 확인된 이수자 수 등을 고려했을 때 학생의 의사에 따라 선택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전공 관련 교과 평균 등급은 2.64였다. <통계조사>를 비롯한 진로선택 과목과 <국제경제Ⅰ> 등을 비롯한 전문 교과 이수 이력이 확인됐지만, 보통 교과 안에서 적극적으로 과목을 선택한 지원자 B가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원자 C’의 경우 공동 교육과정으로 전문 교과인 <국제경제Ⅰ>을 이수했지만, 사회 교과 일반선택 과목으로 <경제>가 개설됐는데도 미이수로 확인된 점이 평가 시 질문으로 남았다. 최종 평가에서 지원자 B는 상위 7%, 지원자 A는 상위 14%로 ‘매우 우수’인 데 비해 지원자 C는 ‘우수’로 분류됐다. 


진로 탐색 역량을 확인하기 쉽지 않았다고 평가받은 ‘지원자 D’는 상대적으로 <미적분>과 <경제>를 이수하지 않았고, 과목 이수 이력에서 방향성을 찾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수학·과학 기본에 충실한 지원자 높은 평가 


동국대가 제시한 AI융합학부의 핵심적인 전공 관련 교과는 수학이다. 세부 전공이 컴퓨터공학 멀티미디어소프트웨어 인공지능 데이터사이언스 엔터테인먼트테크놀로지로 나뉜 AI융합학부는 전공 특성상 수학에 대한 기본 개념과 지식 이해를 바탕으로 한 논리적 사고력, 다양한 분야의 융합을 위한 기초 소양과 협업, 문제 해결력, 창의성이 필요하다. 


AI융합학부에 최초 합격한 지원자 A와 C중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은 학생은 서류 평가 점수 100점 만점 기준 96.4점을 받은 A였다. C는 92.1점을 받았다. A학생은 전공 관련 교과 평균 등급이 1.28로, 1.42인 C학생보다 높았다. 


지원자 A와 C는 공통적으로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등 전공 공부에 필요한 보통 교과 주요 수학 과목을 모두 이수했다. 특히 A의 경우 수학 교과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에서 수학적 사고력의 우수성이 확인된 사례다. 프로그래밍과 인공지능 분야에 대한 관심은 두 학생 모두에게서 확인됐다. 전문 교과 중 <정보과학> 이수 이력이 A에게서 확인됐지만, 이 과목을 제외하면 모두 보통 교과 안에서 일반선택, 진로선택 과목을 중심으로 이수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불합격한 지원자 B와 D 중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학생은 서류 평가 점수 100점 만점 기준 81.9점을 받은 B였다. D는 그보다 조금 높은 89.6점을 받았다. B는 수학 교과 중 <확률과 통계>를 이수하지 않았고, 진로선택 과목 중 <물리학Ⅱ>를 이수했지만 다른 지원자에 비해 과학 이수 과목이 적었다. 과학 동아리에서 활발히 활동한 점은 비교과에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전공 관련 교과 평균 등급이 3.4로 가장 낮아 교과에서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원자 D의 경우 전공 관련 교과 평균 등급이 2.57로 B보다는 높았지만, <정보> 과목 성취도가 낮은 편이었고, 주로 건축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어 전공 관심도는 부족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종합 전형의 서류 평가 결과를 과목 이수 이력과 전공 관련 교과 평균 등급만으로 단순화하기는 어렵지만, 전공에 필요한 과목을 적극적으로 이수한 학생들이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등 서류의 질적 측면도 우수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통 교과 내 다양한 이수 전공 선택 폭도 넓힌다


대학은 종합 전형 서류 평가 시 진로선택 과목에 앞서 공통 과목과 일반선택 과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대학 공부를 위한 기초 학업 역량을 쌓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앞서 5개 대학의 공동 연구 보고서에서는 “고등학교 단계에서 필요한 교과별 학문의 기본적인 이해에 바탕을 둔 일반선택 과목을 충실히 이수하고, 자신의 진로·적성에 따라 희망 전공(계열)과 관련한 진로선택 과목을 이수하고 있는지 연계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때 학습 단계(위계)에 맞게 난도와 수준을 높여 탐구하는 과정도 주되게 살핀다. 

 

이 책임입학사정관은 “현재는 고교학점제로 가는 과도기이기 때문에 학교별 편차를 고려해 보통 교과 안에서 선택 과목을 다양하게 개설하고, 학생들의 선택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학생들 입장에서도 수학, 사회, 과학 교과에 해당하는 선택 과목들을 다양하게 이수해두면 대입을 준비할 때 전공 선택의 폭도 그만큼 넓어진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