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과 생명과학 융합한 뇌과학, 내게는 알고 싶은 미지의 세계
최진하 | 이화여대 융합학부 뇌인지과학전공, 경기 인창고 졸업
과학을 좋아했기에 물·화·생·지 네 과목을 모두 배울 수 있다는 점에 끌려 과학 중점 학급을 운영하는 경기 인창고에 지원했다. 세월호 유가족 등 사회적 트라우마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해온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의 강의를 우연히 듣고 난 후부터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한데 심리학은 대부분 인문 계열로 분류되기에 과학 연구원과 심리학 사이 절충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를 쓴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정재승 교수를 통해 ‘뇌과학’이라는 영역을 알게 됐다. 사람의 심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했다. 이화여대 융합학부 뇌인지과학전공은 뇌과학 연구원을 꿈꾸는 최진하씨에게 마침 딱 맞는 학과였다. 고교 3년 내내 연구원으로서 갖춰야 할 자세를 다양한 실험을 통해 배운 진하씨의 모습은 ‘창의적인 과학자상’ ‘성실한 과학자상’ ‘젊은과학자상’ 등의 교내 수상 경력을 통해서도 익히 엿볼 수 있었다.
취재 정애선 기자asjung@naeil.com
사진 이동웅
“교과서에 실린 실험, 모두 해보고 싶었어요”
진하씨의 학생부와 자기소개서에는 지식을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실험을 통해 확인하려 했던 ‘욕심’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실험을 설계하고 탐구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었다. 1학년 때부터 꾸준히 활동한 생명과학실험 자율동아리에서 했던 실험 중 ‘GMO 콩 판정 실험’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께서 GMO 콩을 구해주셔서 PCR과 전기영동 장치를 이용해 유전자 밴드를 분석하는 실험에 도전했어요. 이 실험을 처음 했을 때는 아직 <생명과학Ⅰ·Ⅱ>를 배우기 전이었기 때문에 개념도 어렵고, 실험기구 사용법도 낯설어 고생을 좀 했죠. 이상하게 난도가 높을수록 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하하. 어려운 만큼 새롭게 배워가는 즐거움이 컸던 데다 분자생물학에서는 기본적인 실험이기에 꼭 해내고 싶었거든요. 여러 차례 실험을 반복하면서 과정을 꼼꼼히 정독하고, 각 실험 절차가 필요한 이유와 결과에 미치는 영향 등을 생각하면서 과학적 원리를 배워갔어요. 이 경험을 나중에 생명과학 수업과 연결하니 더 구체적으로 시각화되더라고요.”
2학년 때는 한발 더 나아가 교과서에 실린 실험을 모두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동아리 부원들과 함께한 ‘용혈 실험’에서는 ‘길쭉한 타원형 혈구’를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각자 혈액을 뽑아 실험하던 중 한 친구의 혈액에서 길쭉한 타원형 혈구를 상당수 확인하게 됐어요. 원래 원형이어야 하는데, 혹 혈구가 세워진 채 고정되었나 싶어 해결 방안을 검색해봤지만 관련 자료가 거의 없더라고요. 실험 과정을 되짚어보면서 혈액을 도말하면 혈구가 펼쳐져 고정된다는 걸 알았어요. 다른 원인을 찾아보려고 혈구 관찰 실험 데이터를 비교해보다 ‘낫 모양 적혈구증’의 말초혈액도말 사진을 봤는데, 동아리에서 한 실험 사진과 유사했죠. 이 유전병은 심한 빈혈병을 일으키는데 이 친구에게 그런 증상은 없어 완전히 납득하긴 어려웠어요. 관련 자료와 논문을 계속 찾아보다 타원적혈구증의 경우에도 타원형 혈구가 발견되는데, 대부분 무증상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수업 시간에 배운 원리를 적용해 실험을 직접 해보니 지식의 폭이 넓어지는 기쁨을 찾게 된 계기였죠.”
심리학에 대한 갈증 풀어준 자율동아리
인창고의 <과학교양> 수업은 1학년 학생들 모두가 참여하는 팀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한 학기 동안 수행하는 팀 프로젝트 주제로 진하씨가 도전한 것은 ‘카무트의 생화학적 특성을 이용한 천연 스킨 만들기’. 화학 화장품의 부작용으로 고생했던 경험을 살려 잡은 주제였다. 역시 실험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항산화 효과가 뛰어난 셀레늄을 함유한 곡물인 카무트를 이용해보기로 하고, 먼저 곡물 추출액 제작법을 조사해봤어요. 식물 추출액을 다루는 화장품 회사들이 수증기 증류법을 이용한다는 것까지는 알아냈는데, 학교 실험실에서는 이 장치를 재현할 수 없다는 문제에 부딪혔죠. 대체할 만한 실험 장치를 구상하고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최종적으로 학교 실험실에 있던 ‘리비히 냉각기’를 활용한 실험 장치를 설계했어요. 수증기 증류법 장치 구조도를 봤더니 리비히 냉각기와 유사하더라고요. 추출 과정이 오래 걸려 늦은 시간까지 실험실에서 기다려야 했고, 수시로 냉수를 교체해야 했지만 결국 추출액을 빼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어요. 이 추출액으로 스킨을 만들어본 뒤 효능을 측정하는 실험으로 이어갔고요. 연구에 있어 필요한 집요함과 집중력을 배울 수 있었던 경험이었죠.”
줄곧 심리학을 배우고 싶었지만, 신청 인원이 부족해 결국 폐강된 <심리학> 수업 대신 진하씨가 선택한 방법은 자율동아리였다. 심리학에 관심 있는 친구들과 함께 ‘혜윰’이라는 이름의 자율동아리를 만들고, 뇌과학과 접목한 심리학의 세계를 나름대로 탐구해갔다.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라는 책에 ‘폭력성은 타고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었어요. 결론을 내리기 어려워 동아리 부원들에게 주제 토론을 제안했는데, 폭력성을 타고나더라도 낙인 효과를 고려하면 차별적으로 대우해선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하지만 ‘사람에게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향이 있으며 이를 거부할 자유의지가 있을까’라는 의문은 남아 있었죠. 실마리를 찾게 된 것은 <마음은 어떻게 작용하는가>와 <뇌의 지도, 커넥톰>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였어요. 뇌의 선천적인 구조는 유전자에 의해 설계되지만, 뇌의 활동에는 뉴런 간 연결 구조, 커넥톰이 큰 영향을 미치기에 경험이나 의지에 의해 상당 부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 과정에서 ‘우리의 정신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며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라는 뇌과학의 근본적인 질문을 더 탐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의 전공에 대한 확신도 갖게 됐죠.”
“동경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보세요”
뇌과학 연구원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자신의 학생부가 특성화된 학과의 인재상에 맞지 않았을까 짐작한다는 진하씨에게도 슬럼프는 있었다.
진하씨가 지원한 이화여대 미래 인재 전형은 수능 최저 학력 기준도 있었기에 막판 수능 집중도가 필요했지만, 수능을 한 달 앞두고 고3 학생들이 한 번쯤은 겪는다는 ‘번아웃’이 찾아왔던 것. 다행히 1등급을 받은 국어가 최저 기준을 충족할 수 있었던 일등공신이 되어줬다.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꾸준히 해온 힘인 것 같단다. 교과 공부에 있어서도 좋아하는 과학 네 과목은 Ⅰ·Ⅱ과목을 모두 이수하고, 주문형 강좌인 <화학실험>과 <고급생명과학>에도 도전했지만, 수학 과목은 생각만큼 성적이 잘 나와주지 않아 고민하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여러 영역의 학교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온 것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자율동아리와 팀 프로젝트, 멘토링, 교내 대회 등에 거의 다 참여할 만큼 일을 많이 벌인(?) 편이었어요. 지금의 진로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활동도 많았기에 어떻게 연결시킬지 고민하기도 했지만,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아요. 크게 상관없을 것 같던 활동과 수업 안에서도 의외의 한마디가 의미를 부여한 경험이 적지 않았거든요. 진로를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도 많을 텐데요. 제 경우, 멘토가 될 만한 분들에 대한 ‘동경’이 진로를 찾아가는 데 있어 가장 큰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친구와 함께 애니어그램 전문가나 경제심리 전문가, 정신과 전문의 등 직업인 인터뷰도 많이 다녔거든요. 동경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분야에도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제가 과학자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진리를 향한 끝없는 갈망임을 배울 수 있었던 것도 각 분야 전문가들의 삶을 접하면서였으니까요.”
나를 보여준 학생부 & 자기소개서
학생부
1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자율동아리 ‘Alive’에서 GMO 콩 판정 실험을 하며 유전자 분석에 흥미, 혈구 프레파라트를 제작하고 마이크로미터를 이용해 혈구 크기 측정 실험, 뇌 모형 분해 조립을 통해 뇌의 해부학적 특징 이해 등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과학교양> 카무트 천연 스킨을 주제로 한 학기 동안 팀 프로젝트 수행, 실험 과정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결과 분석 과정에서의 협력 및 탐구심, 과학적 사고력이 돋보임
2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자율동아리 ‘Alive’에서 심장 해부 실험을 통해 순환기관 관찰, ACE 유전자 증폭 실험을 통해 유전자 분석 이해 등, 자율동아리 ‘혜윰’에서 심리학 관련 독서 토론, ‘군중심리’를 주제로 한 설문조사, 책자 제작 등 인간 행동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한 활동 주도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확률과 통계> 조합을 이용해 멘델의 유전법칙 설명, <화학실험> 과산화수소 분해 반응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찾는 과정에서 실험의 한계와 문제점 정확히 인지, <생명과학Ⅰ> 전공 심화 실험에 참여해 분자생물학 실험에 필요한 기기 사용법을 익히고, 구강세포에서 DNA의 ACE 유전자 증폭 실험, 콩에서 추출한 DNA를 증폭해 GMO 여부를 분석하는 실험 수행, <생명과학Ⅱ> 뇌 안 위치세포와 격자세포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존 오키프와 모세르 부부 조사
3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최신과학뉴스반’과 ‘독서토론’ ‘화학생명심화’ 자율동아리에서 뇌과학과 생명과학 관련 토론 및 조사 활동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독서와 문법> 관심 있는 과학 뉴스 소개 수행평가에서 치매 등의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광유전학을 이용한 치료 원리’ 기술 조사 발표, <영어 독해와 작문> 운동이 두뇌에 끼치는 긍정적 영향에 관한 지문을 읽고 관련해 심화 학습, 책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 소개, <생활과 윤리> 뇌사와 관련된 내용 스크랩하며 생명 윤리에 관심, <화학Ⅱ> 신경전달 물질의 화학 작용을 통해 뇌기능을 제어하는 ‘뇌와 신경계의 화학적 메커니즘’ 정확히 이해, <고급생명과학> 신경에 의한 우리 몸의 조절 과정과 특징 발표
자기소개서
▒ 1번 학습 경험
자율동아리 ‘Alive’에서 진행한 GMO 콩 판정 실험, 교과서에 실린 실험을 모두 해보기로 하고 진행한 ‘용혈 실험’에서 관찰한 길쭉한 타원형 혈구 등과 관련, 수업에서 배운 원리를 적용해 실험을 직접 해보면서 배운 점을 담았다.
▒ 2번 교내 활동
<과학교양> 수업에서 화학 화장품의 부작용으로 고생했던 경험을 살려 진행한 팀 프로젝트 ‘카무트의 생화학적 특성을 이용한 천연 스킨 만들기’, 노벨상 과학 에세이 대회를 통해 알게 된 존 오키프의 연구와 생애 조사, 친구들을 모아 만든 심리학 자율동아리에서 뇌과학과 심리학의 연관성을 조사하며 과학 연구원으로서의 자세를 배우고, 뇌인지과학전공에 진학하고 싶은 꿈을 갖게 된 과정을 풀어썼다.
교사의 시선으로 본 수시 합격생
“뚜렷한 목표의식과 노력의 과정 돋보여”
진하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뚜렷한 목표의식과 노력의 과정이 돋보이는 학생이었습니다. 심리학 분야에 특히 관심이 많아 자율동아리를 구성해 계획하고 운영하는 적극성과 책임감도 두드러졌고요. 심리학을 비롯, 생명과학 등 관심 있는 분야를 융합해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심리학과 뇌과학의 연관성을 찾게 되었습니다. 마음과 행동의 근간이 되는 뇌작용을 이해하고, 심리적 문제를 뇌의 작용과 연관 지어 연구하는 뇌과학 연구원이 되고자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이었죠. 모둠 활동 등에서 구성원들의 역할을 분담하고 공동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조력하는 역량, 솔선수범하는 책임감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한 부드러운 리더십도 돋보였던 만큼, 훌륭한 뇌과학 연구원이 될 진하의 미래를 기대합니다.
_생명과학 담당 인창고 전수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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