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스럽게 수학 공부하다 경제를 다시 보게 됐어요
우정원 | 서울대 경제학과, 서울 배재고 졸업
친구의 조언으로 ‘주관적인’ 최선이 아닌 ‘객관적인’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깡’으로 성적을 올렸다. 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 수학에 흥미를 느껴 큐브를 분해하고 맞추듯 ‘괴짜’스럽게 수학을 공부했다. 단순하게 받아들인 수요곡선이 무차별곡선과 회전 이동하는 예산선을 통해 도출되는 것을 알고 나서 경제에 몰입해 경제학과로 진로를 정했다. 학원 대신 자기 주도 학습과 친구와 함께 성장하는 공부로 서울대의 높은 벽을 뛰어넘어 ‘입시의 정도’를 보여준 우정원씨의 고교 3년을 만나보자.
취재 박민아 리포터 minapark@naeil.com
사진 이의종
‘주관적’이 아닌 ‘객관적’인 최선
처음 받아본 고등학교 성적표는 엉망이었다. 중학교 때 암기 과목 위주로 성적을 올렸기에 주요 과목 성적 역시 처참했다. “1학기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친구에게 이번엔 정말 열심히 했다고 자랑했어요. 그런데 친구가 ‘어떻게 그것밖에 안 했냐, 큰일 난 거 아니냐?’고 반문하더라고요. 정말 충격이었죠. 곰곰이 생각해보니 ‘주관적’인 최선이 아닌 ‘객관적’인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뒤엔 공부량과 수준을 2배로 올렸어요. 너무 힘들었지만 ‘깡’으로 버티다 보니 점점 문제 수준에 적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정원씨는 학원에 다니지 않고 학교 방과 후 수업과 자율학습을 통해 자기 주도 학습을 이어갔다. 수학에 흥미를 가지게 된 계기 역시 1학년 때 수강한 방과 후 수학 수업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능에 도움이 되는 수업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쓰는 함수와 정의역의 기호는 왜 이렇게 생겼는가?’ ‘함수에 무엇을 곱한 것은 어떤 식이 된다’ 등 사고방식적인 부분을 많이 배웠어요. 수업이 끝날 즈음, 수학은 ‘주어진 것으로부터 도출하는 일련의 논리적인 과정’이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죠.”
이후 단순히 문제의 답을 구하기보다 그 문제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생각해보고, 정답을 도출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풀이법을 추론해보는 등 수학 공부를 ‘괴짜’스럽게 했다. 해답을 보지 않고 풀었기에 2문제 푸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고 문제를 풀고 나면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고.
이런 과정을 거쳐 2학년 수학 경시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고 성적은 천천히 오르기 시작해 3학년 때는 주요 과목을 모두 1등급으로 마감, 정확히 우상향의 내신 성적을 만들어냈다. 같은 고교의 서울대 지원자 중 평균 내신은 가장 낮았지만 경제학과에 합격해 종합 전형이 내신만을 보는 전형이 아님을 입증해낸 것이다.
단순 개념 아래 입체적 원리, 경제가 재밌어졌다
학교에서 매년 열리는 ‘대학 연계 아카데미’에 참여해 미시경제학 개론을 접하고 나니 딱딱한 개념들의 집합이라고만 생각했던 경제에 대한 생각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단순하게 받아들인 수요곡선이 무차별곡선과 회전 이동하는 예산선을 통해 도출된다는 강의를 듣고 난 후에는 개념으로만 알던 수요곡선을 ‘연역’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단순한 개념의 기저에 이를 설명하는 입체적인 원리가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면서 사회 수업에 몰입하게 됐어요. 어렴풋이 받아들이는 지식에 만족하지 않고 근본 원리를 논리적으로 더 파고들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음을 깨달았지요.”
2학년 경제 수업에서는 기업의 이윤 극대화 전략에서 배우는 한계수입곡선이라는 개념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됐다. 한계수입의 정의는 이해했지만 한계수입곡선의 기울기가 왜 수요곡선의 2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은 고등 과정에서는 다루지 않는다며 넘겼지만 궁금증은 계속됐고 스스로 그 이유를 찾기로 했다.
“답을 찾기 위해 미시경제학 MOOC 강의를 찾아 듣고 경제학원론을 살펴봤죠. 결국 총수입 그래프가 가격과 수량의 곱이고, 한계수입곡선은 총수입 그래프의 미분으로 설명할 수 있음을 알게 됐어요. 또 그래프의 극댓값은 미분계수가 0인 지점이라는 수학 수업 내용에 착안해 총 수입과 총 비용 그래프의 차가 이윤이므로 그 그래프가 극값을 가지는 MR이 MC인 지점에서 이윤이 극대화됨을 깨달았어요.”
단순히 주어진 지식을 받아들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보다 더 근본적인 원리를 찾는 학습 방식이 성적 향상에도 도움이 됐다. 또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보람 찬 경험이었으며, 원리를 이해한 이런 경험들이 고등학교 시절 꾸준히 학습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성장의 계기 된 나의 ‘오만’
2학년 때는 교내 토론제에 참가했다. 공유경제가 가진 불안정성과 가능성, 대안에 대해 폭넓게 다루는 자리에서 노동의 유연화는 분명 장점일 수 있지만, 직업의 불안정성을 보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1학년 때의 수상 경험을 바탕으로 팀원들과 합숙까지 하며 토론을 준비했고 팀원 모두가 같은 결론에 도달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졌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모두 착각으로 드러났다.
“팀 내부에서는 완성되었다고 평가했던 논리와 주장들이 객관적인 근거 없이는 그저 하나의 ‘관점’에 불과할 뿐 상대방을 설득하기에 역부족이었음을 뼈저리게 실감했어요. 토론이라는 형식을 고려해 내 주장을 뒷받침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자료를 수집했어야 했는데 우리의 논리에 오류가 없다고 과신한 거죠. 당시에는 나의 논리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대방을 탓하기도 했는데 선생님, 팀원들과의 피드백을 통해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1년 반 동안의 취약 계층 아이들을 위한 교육 봉사 역시 자신의 ‘오만’을 깨닫게 했다. 평소 학습과 가르치는 일 모두 자신 있었기에 기대감으로 손꼽아 기다린 첫 수업 날 느낀 가장 큰 감정은 기쁨이 아닌 두려움이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 아이를 가르치는가?’라는 질문이 뇌리에 스쳤을 때 멘토라는 이름이 주는 무거운 책임감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제가 담당한 아이가 수업을 어려워해서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제가 교내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급우들에게 문제 풀이를 알려주곤 할 때 일종의 ‘오만’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어요. 제가 알려주는 풀이를 어려워하는 것은 상대가 노력과 고민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여겨 더 나은 풀이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거든요. 봉사 활동을 하며 이런 태도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죠. 이후 경제 멘토링 활동에서는 무역 성립 조건이나 환율 문제에 대해 단순히 공식만 알려주기보다 상호 이익이나 가치의 비교 측면에서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멘티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제 자신에게도 더 깊고 직관적인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가 됐지요.”
함께하는 공부의 즐거움
정원씨의 학생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방과 후 수업을 통한 자기 주도 학습과 함께하는 공부에 대한 표현이다. 3학년 행동 특성 및 종합 의견에는 ‘바른 생활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생활 자체가 바른 학생,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학생, 수업 태도·근면·솔선수범 분야에서 1위에 뽑힐 정도로 학급원들 모두가 인정하는 학생’이라고 쓰여 있다. 또 학생부 곳곳에서 ‘학우들에게 즐겨 설명함’ ‘멘토 역할’ ‘친구들에게 조언’ ‘상호 성장’ 등의 문구를 볼 수 있다. “친구들이 문제를 풀면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면 지나치질 못하겠더라고요. 같이 고민해 해결하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는 거예요. 또 제가 공부하다 무언가를 새로 발견하게 되면 ‘야! 이거 정말 재미있지 않냐?’하고 알려주곤 했어요. 그러면 재미가 2배가 되곤 했거든요.” 입시를 앞둔 고3 교실이지만 그가 속한 반은 밝고 유쾌했을 것 같다.
나를 보여준 학생부 & 자기소개서
학생부
1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경영 동아리에서 모의 창업 캠프, 기업 분석 프로그램, 경영-경제 특강에 참여. 총 3회에 걸친 ‘청소년 공유경제 학교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공유경제의 한계 및 한국적 적용에 대해 고민함. ‘대학 연계 인문사회 아카데미’에서 수요-공급 그래프, 무차별곡선 등 다양한 경제 모형의 의의와 도출 과정을 알게 됨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수학Ⅰ> 도형의 해석기하학에 관심이 높아 공식을 스스로 유도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등 도전적인 모습을 보임. 수학 자체에 호기심이 생겨 관련 도서를 읽고 하나의 원리로도 다양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파스칼의 삼각형 규칙을 합, 전개식 등에 적용, 난해한 문제도 기본적인 수학적 개념이 관통한다는 자신감을 얻음
2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계량경제학’을 주제로 한 K-MOOC 강의를 수강하고 보고서 작성·발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공유경제>라는 책을 읽고 ‘공유경제의 가능성과 불안 요소, 그리고 그에 따른 전망은 어떠한가?’라는 논제에 관해 3인 1조의 팀을 구성해 교내 토론제 참가. 경영 동아리 부단장으로서 경제 모의고사 풀이, 멘토링, ‘최저임금 상승은 바람직한가’에 대한 토론 등을 계획하고 진행함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미적분Ⅰ> 경제 시간에 배운 가격탄력성에 대해 도함수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유리함수의 도함수를 유추하여 수업 시간에 발표. <경제> ‘자본주의는 비도덕적인가?’라는 주제로 발표, 무한 경쟁 사회의 고통받는 약자들에 대한 이미지에서 비롯된 자본주의에 대한 오래된 오해를 반박함
3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동아리에서 죄수의 딜레마와 우월 전략에 대해 ‘경제학 원론’과 ‘전략적 사고’를 참고해 보고서 작성, ‘대학생 멘토링 강연’에서 경제학과 경영학의 학문적 연구에 대해 고민함
자기소개서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확률과통계> 급우들의 문제 풀이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하는 친절한 학생임. 단순한 해법을 구하는 것보다 친구들과 같이 다양한 풀이 방법을 시도하는 등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닌 상호 성장을 위한 학습 전략을 채택. <미적분Ⅰ> 수식적인 접근보다는 직관적인 접근을 선호하며 자신만의 풀이법을 고안해 학우들에게 즐겨 설명함 자기소개서
▒ 1번 학습 경험
‘대학 연계 인문사회 아카데미’에서 미시경제학을 접하고 경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바뀌게 된 과정, 고등학교에서 다루지 않는 개념들을 MOOC 강의와 경제학 원론 등을 통해 탐색해 나간 경험을 통해 단순히 주어진 지식을 받아들이거나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습득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더 근본적인 원리를 찾는 방향으로 학습 방식이 바뀐 과정을 담았다.
▒ 2번 교내 활동
시행착오를 줄이고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주제 설정, 시간 배분 등 동아리 활동 전반에 대해 참조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든 경험과 교내 토론제에서의 실패 경험을 통해 부족한 점을 되돌아본 과정을 풀어썼다.
▒ 4번 독서 세 권
경제학도의 길에 확신을 가지게 해준 <자본주의는 도덕적인가>와 다양한 의견을 함부로 배척하지 않는 습관을 가지게 해준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자유로부터의 도피> 등 세 권을 선정했다.
교사의 시선으로 본 수시 합격생
“자연 계열 수학 심화 수업에도 도전하던 학생”
수학 분야에 관심이 많은 2학년 자연 계열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공 심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정수론, 행렬 등 수학과나 공학 계열에 지원하는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정원이가 신청을 한 거죠. 혹시 잘못 신청했거나 내용을 잘 모르는 게 아닌가 해서 물어봤더니 본인이 배우고 싶어 신청했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수업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어렵긴 하지만 재미있게 듣고 있다며 자신 있게 대답하던 모습도 기억에 남아요. 항상 좋은 점, 긍정적인 면을 먼저 이야기하는 학생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여러 프로그램에 대하여 다수의 학생이 힘든 점이나 불만을 토로할 때도 정원이는 좋은 점을 찾아서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 같아요. 덕분에 다른 급우들에게 항상 긍정적인 자극을 줬어요. 성실하게 자신만의 학습 과정을 밟아가면서 동시에 친구들이 어려운 문제를 물어보거나 학습 계획을 세울 때 흔쾌히 조언자의 역할을 해줬어요. 앞으로도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밝고 긍정적인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요.
_2학년 담임 이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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