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어렵고 고리타분하다? 시대 초월한 지혜 수업 안에서 나눠요
국어교과 선택 과목 돋보기 1 | 고전읽기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고전읽기>는 국어 교과 안에서 <심화국어> <실용국어>와 함께 진로선택 과목에 속한다. 교육과정 안에 편제돼 있긴 하지만, 교과서가 따로 없기 때문에 수업을 이끄는 교사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과목으로 꼽힌다. 실제로 과목 취지에 맞게 수업을 운영하는 사례도 많지 않다. 하지만 학생들이 다양한 고전을 읽으며 통합적인 국어 능력을 기를 수 있어 꼭 필요하고 중요한 과목이다.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고전을 통해 수준 높은 교양을 갖추고, 진로에 필요한 지혜와 소양을 쌓는 데 도움이 된다.
취재 홍정아 리포터 jahong@naeil.com
도움말 송승훈 교사(경기 광동고등학교)·전성운 교사(경기 다산고등학교)·한창호 교사(서울 보성고등학교)
한문 문학 작품이 고전? 시대 초월해 가치 인정받는 ‘고전’
<고전읽기>에서 말하는 ‘고전’이란 단순히 ‘한문으로 된 문학 작품’을 말하는 게 아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 안에서 설정한 고전의 개념은 ‘글이 쓰인 시대를 초월해 보편적 가치를 갖는 글’로 보다 넓은 의미로 풀이된다.
경기 광동고 송승훈 교사는 “고전이라고 하면 흔히 <심청전> <홍길동전>을 떠올리기 쉽지만, 시대를 초월해 현대 사회의 가치 있는 문학 작품과 글도 고전에 포함된다. 한마디로 <고전읽기> 수업은 책을 읽고 친구와 의견을 나누며 소통하고, 그 결과를 말과 글로 표현하는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과목 취지로 볼 때 동·서양의 모든 고전 작품이 학습 대상이 될 수 있지만, 특히 심도 깊은 인문학 교양에 관심이 많은 학생에게 권장되는 과목이다.
경기 다산고 전성운 교사는 “<고전읽기>는 국어 교과의 진로선택 과목으로 우리 학교는 다양한 활동 중심 수업을 구현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2학년 3개 반에서 한 학기 2단위로 두 학기에 걸쳐 총 68시간의 수업을 운영했다. 학교에 따라 3학년에 수업을 편성하는 곳도 있는데, 이런 경우 자칫 문제 풀이식 수업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한 권의 책으로 삶의 성찰까지 가능한 수업
단위 학교에서 과목 취지에 맞게 수업을 운영하는 사례는 아직까지 많지 않다. 교과서가 따로 없기 때문에, 학생들의 학업 수준을 고려해 교사가 직접 교재를 선택해 수업해야 하는 부분이 부담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교과서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수업을 보다 다양하고 깊이 있게 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서울 보성고 한창호 교사는 “2학년을 대상으로 국어 교과의 일반선택 과목인 <독서와 문법> 과목을 수업한 적이 있다. 교과서가 있지만 교과서대로 내용을 다루지 않고 진로 독서를 중심으로 친구 인터뷰, 시 경험 쓰기, 시 영상 만들기 등 활동 중심 수업으로 구성했는데, 오히려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능동적인 수업이 가능했다. 교과서가 없는 <고전읽기>는 교사의 의지와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로 수업을 설계할 수 있는 과목”이라고 전했다. <고전읽기>는 분절된 내용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이나 완결된 한 편의 글 전체를 다룰 수 있어서 삶을 성찰하는 역량을 키우기에도 적합한 수업이다.
‘사랑’과 ‘우정’을 주제로 친근하게 접근한 수업 사례
전 교사가 진행한 경기 다산고의 <고전읽기> 수업은 ‘사랑’과 ‘우정’이라는 친숙한 주제를 통해 학생들이 보다 쉽게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학생들은 두 학기에 걸쳐 플라톤의 <향연>을 비롯해 이탈로 칼비노의 <왜 고전을 읽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키케로의 <우정에 관하여>, 박지원의 <예덕 선생전> <마장전> 등 수준 높은 글을 읽었다.
전 교사는 “모둠 친구와 함께 고전을 읽으며 질문을 만들고 답을 찾는 활동을 진행했다. 평가는 구술과 논술 평가로 치렀는데, 구술 평가는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을 읽고 자신이 꿈꾸는 가족의 모습을 시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논술 평가는 <향연>을 읽은 뒤 자신이 만난 최고의 사랑에 관해 글을 쓰게 했다”고 설명했다.
후속 작업으로 읽기 쉬운 단행본을 정해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이어갔다. 독서 후에는 ‘책과 대화하기’나 ‘북 트레일러 만들기’ 등으로 마무리했다. 북 트레일러 만들기는 1분 30초에서 3분가량의 짧은 영상에 소개하고 싶은 책의 내용을 스토리텔링해 제작하는 것. 구성은 물론 대본과 연출, 촬영, 출연까지 학생들이 직접 한다.
전 교사는 “교사 입장에서도 <고전읽기> 수업은 부담이 아니라 기회다. 전국 국어 교사 모임의 독서 교육 분과인 ‘물꼬방’의 도움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는데, 어려울 땐 동료 선생님들과 머리를 맞대는 것도 방법이다. 학생들의 마음속 책장에 책을 꽂아주는 선생님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Mini interview <고전읽기> 배워보니
“간호사 꿈꾸는 내게 삶의 지혜 만나게 해준 수업”
김다예
경기 다산고 졸업
Q. <고전읽기> 수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다면?
‘책과 대화하기’와 ‘북 트레일러 만들기’ 수업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몬드>라는 책을 읽고 모둠 친구들과 대화하고, 그 과정에서 나온 얘기들을 모아 북 트레일러로 만들었다. 책을 읽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을 통해 느낀 감정이 서로 다르다는 것도 새로웠는데, 무엇보다 한 권의 책으로 친구들과 공감할 수 있어 좋았다.
Q. <고전읽기> 수업을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
간호사라는 직업을 희망하는 나에겐 무엇보다 삶의 지혜를 경험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처음엔 막연히 어렵고 고리타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접해보니 공감되는 글이 정말 많았고, 내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생각이 커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다.
Q. 후배들에게 <고전읽기> 수업을 추천해준다면?
<고전읽기> 수업은 ‘유쾌하고 특별한 수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고전을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권하고 싶다. 우리보다 먼저 산 이들의 오랜 지혜와 성찰이 담겨 있는 글인 만큼, 고전의 가치를 알게 되면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꼭 필요한 인문학적 교양과 삶의 성찰을 익힐 수 있는 과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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