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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수시 합격생 인터뷰] 서울대 의예과 백인혁

메르스·코로나19 등 감염병 연구하는 기초의학자 되고 싶어요

백인혁  |  서울대 의예과  대구 경신고 졸업

 

코로나19 사태를 보며 메르스 사망자가 증가했던  2015년을 떠올렸다. 신종 감염병에 대한 매뉴얼이 없던 때라 철저히 대응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사망자가 증가하는 것을 보며 감염병 전파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고교에 입학해서도 감염병에 관한 관심이 이어지면서 의학자의 꿈을 품게 된 서울대 의예과 백인혁씨의 얘기다. 감염병 전파의 수학적 모델을 찾아 학교 내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보는 등 감염병 전파에 관심이 많았던 인혁씨는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보다는 감염병을 본질적으로 연구하는 의학자로서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취재 민경순 리포터 hellela@naeil.com

사진 이의종

 

 

 

인혁씨는 이웃을 돕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수학과 과학, 특히 생명과학과 화학을 좋아했기에 의사 면허증이 있다면 남을 도울 수 있는 분야가 넓어질 것 같아 의대 진학을 꿈꿨다. 물론 뛰어난 학업 역량이 갖춰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요즘은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심각한 상황이지만, 제가 의학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메르스 때문이었어요. 2015년 우리나라에 메르스가 퍼졌는데 감염병에 대한 대비나 매뉴얼이 부족해 상대적으로 사망자가 많았다고 봤거든요. 감염병 확산과 관련해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의학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죠. 대학에 와서는 감염병보다 세포 내에서의 메커니즘에 관심이 많아졌지만요.”

 

 

‘메르스 감염국 2위’의 충격


인류 역사에서 감염병은 항상 큰 공포였다. 바이러스와 세균으로 인한 감염병은 인류 문명을 뒤흔들어놓았고, 수많은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미 대륙을 초토화한 천연두,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숨지게 한 페스트를 비롯해 결핵, 스페인 독감 등의 감염병으로 인류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감염병은 인류와 늘 함께했어요. 아무리 인류가 발전한다 해도 감염병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요. 2015년 메르스가 확산됐을 때 우리나라에서 꽤 많은 사망자가 나왔어요. 메르스에 대한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한 거죠. 그때까지 우리나라가 의료 선진국이라 생각했는데 전 세계 메르스 감염국 2위라는 오명을 썼어요. 사실 충격이었죠.”

 

인류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감염병을 피해갈 수 없다면, 제대로 알고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메르스 사태 때 감염병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읽었던 책이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였어요. 그 당시 의료 현장이 얼마나 긴박했는지 알 수 있었고, 감염병과 같은 질병은 공공의료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였지요.”

 

 

교과 경계 넘나든 의학·생명과학 호기심 


의대, 그것도 서울대 의예과니 높은 학업 역량은 필수다. 무엇보다 인혁씨의 학생부에서 눈길을 끈 것은 교과 간의 경계를 넘나든 호기심이었다. <국어Ⅰ> 시간에 식물의 성장과 관련 있는 에틸렌 속성을 설명하는 과학 지문, 호흡과 심장 구조의 변화를 중심으로 태아의 성장 과정을 다룬 독서 지문을 대할 때면 관련 있는 과학 정보를 찾아 발표하면서 폭넓게 공부했다. 

 

영어 역시 독해 지문에 생체 모방에 관한 내용이 있으면 현대 의학에서 생체 모방이 적용된 사례와 연결했다. 예를 들면 해파리의 촉수를 모방해 암세포를 추적하는 칩을 개발한 사례, 쥐가 조류 독감에 걸린 새를 감지한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며 생체 모방의 적용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설명했다. 유전자 치료에 관한 영어 지문을 읽고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와 연결 지어 이해하고, 유전자 가위에 대한 찬반 의견을 조사해 발표하는 등 모든 수업에서 자기 주도적인 학생이었다. 

 

“1학년 <사회> 수업 때 창업 활동의 설계 단원에서 의료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한 사업을 구상했어요. 증상을 입력하면 환자의 집과의 거리, 대기 시간, 증상 등을 고려해 가장 적절한 병원을 소개하거나 치료법을 알려주는 의료 정보 사업을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일부 병원에서 사용하는 ‘왓슨’ 과 비슷한 개념이더라고요.”

 

인혁씨 말대로 왓슨은 IBM의 인공지능 솔루션으로 실제 일부 병원에서 활용 중이다. 환자의 증상 등 여러 데이터를 왓슨에 입력하면 병을 진단하고, 선택 가능한 처방이나 치료 방법을 보여준다. 또 수백 종류의 의학저널과 논문 등이 데이터베이스화돼 있어 정확한 진단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사용되는 왓슨과 비슷한 프로그램을 구상했지만, 병원에 가기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란 생각이 들었다. 

 


교내 감염병 전파 추이 수학적 모형 만들기도


서울대 지역 균형 선발 전형으로 입학한 인혁씨는 고교 3년 내내 전 과목에서 1등급을 놓치지 않았다. 3년 내내 한결같이 뛰어난 교과 성적 못지않게 학생부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방과 후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을 통해 자신의 관심 분야를 확장해나간 점이다. 

 

“감염병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감염병 전파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수학 시간에 미분 방정식을 집단 변화 추이를 나타내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미분 방정식을 활용해 교내 감염병 전파의 수학적 모형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지요. 그런 동아리 활동으로 SEIR 모형을 변형해 교내 감염병 전파 추이를 예측할 수 있는 수학적 모형을 만들었지요.”

 

SEIR 모형은 감염병을 이해하는 대표적인 수학적 모형이다. 여러 논문이나 자료를 찾아가며 SEIR 모형을 이해했고, 이를 학교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일단, 학교는 감염될 경우 등교 중단 조치를 취하기에 기존 모형처럼 감염군으로부터의 잠복기, 감염 영향을 계산하는 것이 맞지 않았다. 따라서 감염이 확정된 뒤 등교 중단 조치를 취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해 기존 모형을 변형했다. 

 

영화 <부산행>에서 주인공 일행의 감염 여부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격리하는 장면을 보며 사전 예방 원칙에 의한 정당한 행동이었는지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사회 독서 토론 수업, 과학 독서 토론 수업을 비롯해 방과 후 수업도 다양하게 이수했다. 

 

“토론 수업을 통해 다양한 견해를 접했던 경험은 사고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연명 의료 결정 제도에 대해 토론을 한 적이 있거든요. 정의의 원칙과 인간의 존엄성을 근거로 연명 의료 결정 제도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죠. 그런데 반대하는 측에서 연명 의료 결정 제도의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더라고요. 토론 이후 연명 의료 결정 제도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나라의 경우 환자 본인이 연명 의료 여부를 결정하는 비율이 매우 낮더라고요. 연명 의료 결정 제도에 대한 찬반을 떠나 생명윤리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술실 CCTV 설치, 불법 임신 중절 시술 성행 등 시사적인 주제로 토론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었다. 특히 불법 임신 중절 시술과 관련해서는 현행 법제의 한계를 지적하고, 남성의 책임을 배제한 채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새로운 사회적 합의에 따른 법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페임랩 대회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어요. 페임랩은 3분 이내로 짧게 발표를 하는 건데 파워포인트는 사용할 수 없고 사물만 활용해야 해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로 변이가 일어나는데, 이를 보여줄 소품을 고민하다가 색이 다른 귀마개를 활용했어요. 노랑과 주황 귀마개를 귀마개통에 넣어 변이를 표현한 거죠.”

 

 

 

바이러스의 세포 내 메커니즘 연구하고파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막연하긴 했지만 지적 호기심이 풍부한 사람임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공부할 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해결하려 노력했는지,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관심 분야와 어떻게 연결하고 확장해나갔는지 등을 담으려고 노력했죠. 그리고 어떤 의학자가 되고 싶은지를 담았어요.”

 

서울대 자기소개서 4번, 독서 경험을 묻는 문항에 인혁씨는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 <존 롤스 정의론> <페스트>를 적었다.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와 <페스트>는 감염병을 연구하는 의학자 진로와 관련 있는 책이라면, <존 롤스 정의론>은 가치관을 변화시킨 책이다. 

 

“남을 돕지 않아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존 롤스 정의론>을 읽으면서 개인의 재능과 사회적 지위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이 책을 읽고 가치관이 변한 거죠.”

 

인혁씨는 대학에서 1년을 보내며 감염병 확산보다는 감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세포 내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싶어졌다. 신종 감염병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진 요즘, 인혁씨처럼 기초 의학 연구에 관심 많은 이들의 의대 진학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를 보여준 학생부 & 자기소개서

 

 

학생부

1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AI의사 왓슨에 대한 토론에서 경험과 직관에서 탈피한 AI 의 역할을 강조함. 자율동아리에서 표적 치료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과학 교사 인터뷰를 진행함.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국어Ⅱ> 배경지식을 활용해 비문학 지문을 읽는 능력이 뛰어남, <영어Ⅱ> 독해 지문 중 생체 모방 관련 내용을 수업 시간에 분석한 후 현대 의학에서 생체 모방이 적용된 사례를 조사함. <사회> 창업 활동의 설계 단원에서 'Dr.Data'라는 이름의 의료 정보 사업을 구상함.

 

2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수술실 CCTV 설치 문제에 관한 토론에서 의료 분쟁 시 환자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들어 수술실 CCTV 설치가 환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함. 자율동아리에서 미분 방정식으로 나타낼 수 있는 SEIR 모형을 바탕으로 전염병 전파의 추이를 예측함.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미적분Ⅱ> 교과서에 소개된 로지스틱 모형이 생명과학에서 개체군의 생장 곡선과 유사한 형태를 가진다는 점에서 흥미를 느껴 로지스틱 모형의 식을 직접 유도함. <영어회화> 진화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비판하는 지문을 읽고 진화의 타당성을 제시하고, 그 반박에 대한 재반박을 논리정연하게 발표함. <생명과학Ⅰ> 인플루엔자 대유형 사례를 조사하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감염될 때 일어나는 변이의 메커니즘을 깊이 있게 탐구함. 

 

3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동아리 활동으로 균을 죽이지 않고 독성만을 제거해 슈퍼박테리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기전의 항생제에 주목함. 항생제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을 고려할 때 항생제 개발은 공공재 개념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함. 감염병 확산의 확률적 모형에 관해 탐구하며 대학 진학 후 더 깊이 공부하겠다는 포부를 밝힘.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통합국어Ⅱ> 인문 고전에 대한 이해가 깊으며 진로와 사회 구조를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학생임. <심화영어독해Ⅱ> 지문에 소개된 제2형 당뇨와 제1형 당뇨의 차이를 설명하고, 시각 자료를 활용해 인슐린의 작용과 인슐린 저항성에 대한 개념을 전달함. <생명과학Ⅱ> 효소의 저해제를 학습한 후 항 HIV 약제의 기전에 대해 발표함, 암세포의 비정상적 기능이 세포 호흡과 관련 있을 거라는 의문을 바탕으로 암세포의 대사 과정을 조사함. 


자기소개서

▒ 1번 학습 경험 

이해가 되지 않으면 끝까지 탐구해 의문을 해결하고 노력했던 경험을 담았다. 도함수의 불연속이 되는 상황에 의문이 들어 교사의 도움으로 다르부의 정리를 증명했고, 도함수가 진동할 때 불연속일 수 있음을 추론했다. 또한 <생명과학> 시간에 휴지 전위를 배우면서 이온이 계속 이동하는데 휴지 전위가 일정한 것에 의문을 품고 해결해나간 과정을 풀어썼다.

 

▒ 2번 교내 활동  

동아리에서 미분 방정식을 활용한 감염병 전파의 수학적 모형을 탐구한 과정을 적었다. 특히 SEIR 모형을 활용해 교내 전염병 전파 추이를 나타내는데, 감염률이라는 계수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고 전체 인구 변화를 반영하지 않아 모형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어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과정을 적었다. 연명 의료 결정 제도에 관한 토론에 참가해 생명윤리 문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 점 등을 담았다.

 

▒ 4번 독서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 재난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알게 됐고, 의료 분야에서는 공공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음을 피력했다. 과학, 자본, 인권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존 롤스 정의론> 남을 돕지 않아도 피해만 주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에서 개인의 재능과 사회적 지위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돼야 함을 깨닫게 한 책이다. 


교사의 시선으로 본 수시 합격생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한 성품, 의학자 꿈으로 이어져”

 

인혁이는 멘탈이 강한 친구였어요.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고, 전진해나가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또한,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고, 한결같이 자기가 할 일을 묵묵히 했던 학생이에요. 워낙 공부를 잘해서 주변에 친구들이 질문도 많이 했는데 귀찮아하지 않고 멘토 역할도 잘해주었죠. 서울대 의예과에 합격한 비결은 성실함, 꾸준함, 적극성이었어요.  인혁이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했어요.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도 좋지만, 그 뒤에서 근본적인 연구를 하고 의료 기술에 도움이 되는 의학자를 꿈꾼 것도 같은 이유였던 것 같아요. 뛰어난 학업 역량에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인혁이의 성품은 의사, 의학자에게 꼭 필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_ 3학년 담임 양해욱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