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상담에서 뇌과학까지, 융합 학문으로 지평 넓히는 심리학과
‘심리학’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 마음 꿰뚫기, 상담과 힐링, 범죄 심리, 소비자 니즈. 맞다. 모두 심리학이다. 하지만 이는 심리학의 일부다. 심리학은 그간 인문학의 한 갈래로서 상담·임상이나 사회·문화 심리 분야가 관심을 받아왔다. 한편으론 과학적 방법론을 토대로 뇌, 인지와 같은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 또한 계속해왔다. 심리학과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인문 계열로 편제되어 있지만 사실상 인문·자연 계열을 아우르는 학문인 것이다. 최근 대학들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첨단 학과들을 신설 중이다. 이에 발맞춰 자연과학과의 융합으로 더욱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심리학과의 모습을 담아봤다.
취재 이지연 리포터 judylee@naeil.com
도움말 조용상 교수(고려대학교 심리학부)·조진표 대표(와이즈멘토)
심리학과
심리학과, 첨단 분야와 융합 기반 이미 갖춰
심리학은 통계나 실험과 같은 과학적 연구 방법을 토대로 심리와 행동, 뇌의 작동 원리 등 인간의 모든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과거에는 상담·임상 심리나 사회·문화 심리 등 심리학의 인문 영역이 관심을 받았다. 최근에는 뇌과학, 인지과학 등 자연과학 영역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와이즈멘토 조진표 대표는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심리학과를 문과로 구분하는데 이는 사실 맞지 않다. 미국에선 이과 영역으로 분류한다. 최근 이공 계열 산업과 협업하며 제자리를 찾는 중”이라고 설명한다. 고려대 조용상 교수는 “심리학은 과학적 방법론을 많이 사용해왔다.
특히 통계학은 필수 과목이다. 최근 빅데이터가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인데 심리학과는 통계 기반 학문으로서 데이터 처리 역량이 내재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또 “인공지능 산업 역시 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심리학은 뇌의 신경 기제를 꾸준히 연구해왔다. 기존 연구 결과들에 최근의 코딩 방식 등을 도입하면 심리학과 연계된 인공지능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전한다.
뇌과학·뇌공학 연구 환경 조성 중인 대학들
고려대는 국내 최초로 심리학과를 독립 학부로 전환하고 다양한 변화를 시도 중이다. 문·이학사 동시 학위 수여를 위해 학제를 개편했는데, 최근 대학의 승인을 받았다. 올해 하반기부터 학생들이 듣는 전공 수업에 따라 졸업 시 문학사와 이학사 중 선택해 학위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심리학이 다루는 넓은 스펙트럼을 모두 학습하기보다 특정 영역을 깊게 학습하라는 취지인 셈. 연구 영역 역시 인공지능과 데이터 과학으로 확장 중이다.
조 교수는 “최근 기술 변화에 맞춰 연구 분야도 변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지원받아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고, 의과대학과 공동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의대와 우울증과 수면 장애 간 관계를 연구 중인데, 의학은 생화학적 변화를, 심리학은 행동 변화를 살펴보는 식이다”라고 말한다.
한양대는 심리뇌과학과를 신설해 2021학년 신입생을 모집했다. 보통 심리학과는 사회과학대나 인문대에 소속돼 있다. 이와 달리 한양대는 심리뇌과학과를 데이터사이언스학과와 함께 인텔리전스컴퓨팅학부에 뒀다. 개설한 교과들을 살펴보면 소프트웨어 기반의 공학적 접근으로 뇌과학을 연구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취업 외 석·박사 과정으로 전문성 높여
심리학에서 공부하는 통계, 소비자광고, 조직인사 분야는 기업 활동과 밀접하다. 학사 졸업 후 한국갤럽이나 한국리서치 같은 통계 조사업체나 광고 회사 또는 기업의 마케팅·인사 부서로 진출한다. 반면 상담이나 임상, 행동과학 분야는 학사 이후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석·박사 과정에 지원하고 이후 연구 활동인 박사 후 연구원(Post Doctor)까지 이어가기도 한다.
조 교수는 “최근 고려대는 학·석사 연계 과정을 제도화해 학부 4년과 석사 1년, 총 5년만에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짧은 기간 내에 전문성을 높이려는 취지다”라며 “심리학 전공의 전문성을 쌓기에 앞서 기초 역량인 코딩 능력도 중요해졌다. 수업 중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는데 실험 설계·진행 후 분석까지 모든 영역에서 코딩 역량은 필수”라고 덧붙인다.
진학 시 학교별 특성과 연구 방향 잘 살펴야
고려대 심리학부 요강에서는 ‘문·이과 과목 모두 좋아하는 학생’에게 추천한다고 적혀 있다. 문·이학사 투 트랙(two track)의 심리학도를 키우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반면 한양대는 2022학년 수시 모집부터 심리뇌과학과와 데이터사이언스학과를 합친 데이터사이언스학부가 공과대학으로 편제된다. 통합 학부로 입학해 학생들이 세부 전공을 선택하는 구조다.
한양대 입학처 관계자는 “학과 신설 때부터 공대 특성이 강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편제 변경은 이런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모집 요강도 달라졌다. 학생부 교과 전형이 2021학년 인문·자연 계열에서 2022학년 자연 계열로 바뀐 것. 해당 전형 지원을 희망한다면 ‘수학은 <미적분> <기하> 중 1 과목 이상을 이수, 과학은 <물·화·생·지Ⅱ> 중 1과목 이상 이수’라는 학교장 추천 기준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학생부 종합 전형은 기존대로 인문·자연 계열 교차 지원이 가능하다. 심리학 진학을 희망한다면 세부 전공을 고민해보자. 자칫 상담과 사회심리 같은 인문학 성격의 공부만 생각한다면 입학 후 낭패를 볼 수 있다. 반면 심리학을 뇌과학 측면에서 접근하고 싶은 자연 계열 학생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선택지가 열린 셈이다.
조 대표는 “같은 심리학과라도 교수나 학과 소개를 잘 살펴봐야 한다. 청소년 심리나 직업 심리를 주로 다루거나 신경과학이나 공학 위주일 수 있다”며 “학생부 종합 전형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인문학적 소양과 더불어 어려운 수학 과정에 도전하거나 생명공학 쪽 역량을 쌓아 융합적 강점을 발휘한다면 대학에서 반드시 눈여겨볼 것”이라고 조언한다.
MINI INterview
“뇌는 메가톤급 프로젝트, 뇌 자체가 바로 나이자 우리 모두죠”
박은혜
뉴욕대 신경과학과 박사, 연구원
Q. 소속되어 있는 곳과 담당 업무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면?
뉴욕대 신경과학과 Andre Fenton 교수의 신경생물학 실험실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뇌 부위인 해마와 주변 피질 간 정보 처리 절차를 연구 중이다. 해마는 기억과 장소 정보를 처리하는 곳인데,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사용해 실제 뇌 영역에 저장된 신경 신호들을 분석하고 관계를 규명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Q. 신경과학 분야로 전공을 이어나가고 유학까지 가게 된 계기는?
어릴 때부터 인간이 어떻게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고 기억하는지 궁금했다. 생리심리학은 뇌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영역이다. 석사 과정 때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뇌파 연구 후 기억과 특정 뉴런의 발화 패턴을 계속 연구하고 싶었던 차에, 미국에서 박사 후 연수를 하게 되었다. 뇌과학자들이 자폐, 조현병, 치매, 스트레스 등 관련 뇌신경 질환 프로젝트에서 발견한 결과들이 신약이나 의학 분야에서 의미 있게 활용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Q. 최근 뇌과학, 뇌심리학 분야는 기업들과 협업도 많이 한다던데?
뇌과학, 신경과학은 심리학, 생물학, 물리학, 화학 등 다양한 학제 간 연구가 기본이라 협업이 많다. 우울증, 치매, 중독 등 관련 신약 개발 시 약물의 신경생리학적 기전과 그 효능을 검증하는 협업 사례가 많다. 뇌파나 의공학 장비 개발을 공동 연구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앱 개발이나 데이터 분석 툴 개발 등도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Q. 뇌과학과 관련해서 심리학과 의학 연구 간의 차이점은?
심리학을 포함한 과학은 현상을 예측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고 의학은 실질적으로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뇌과학에서는 뇌의 기본 작동 원리를 이해하여 인지나 정서적 행동의 기전을 밝히고 이 결과로 뇌·신경 질환에서 손상된 기능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려고 한다. 반면 의학 분야는 실제 그 손상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다른 점이다.
Q. 뇌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인데, 뇌에 관심 있는 중·고등학생에게 조언을 한다면?
뇌 연구는 우주 연구와 더불어 인류 역사상 메가 프로젝트급 주제이다. 복잡다단한 영역이라 통합적 접근과 사고가 필요하다. 특히 뇌 자체가 우리 자신이며, 뇌를 이해하게 되면 나와 너, 우리, 더 나아가 사회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폭넓은 시각을 갖게 된다.
다양한 현상이나 인간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고 문제점을 해결해보는 경험을 쌓아보자. 특히 뇌과학 연구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한다. 끈기를 가지고, 다각도로 문제에 접근하는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MINI INterview
“과학적 접근법에 익숙해야 학과 수업이 훨씬 수월해져요”
임민수
고려대 심리학부 2학년
Q. 고려대 심리학부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상담심리학에 관심이 있어 지원하게 됐다. 주위 친구들이 학업 스트레스, 교우나 가족과의 갈등 등으로 힘들어할 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마음이 아팠던 경험이 있다.
Q. 심리학부에 지원하기 위해 준비했던 활동들은?
문·이과를 아우르는 융합적 인재상임을 드러내기 위해 관련 활동을 열심히 했다.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문과지만 수학이나 과학 등에도 관심과 역량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수학 창의성 대회’나 ‘과학 독서 토론회’ 등에 자주 참여하고 수상했다.
또래 상담 동아리를 통해 상담심리학과에 관심이 있음을 보이고, 독서 토론 동아리에서 심리학과 관련 책을 주제로 토론했다. 상담 교사라는 진로 희망과 연계해 지역의 아동센터나 고아원에 가서 교육 봉사를 했다.
Q. 입학 후 대학 수업을 듣고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심리통계 및 실습’ 과목은 고려대 심리학부 학생들의 졸업 전 필수 과목이다. 심리학은 자료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이므로 통계적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뇌를 기반으로 하는 ‘생물심리학’ ‘감각 및 지각심리학’ 등을 심도 깊게 듣다 보면 생물학과에 온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종종 숫자나 통계 프로그램을 힘들어하는 학우들을 보기도 한다. 과학적 접근법에 익숙해야 학교 수업이 수월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전공 수업을 듣다 보면 다들 영어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느낄 것이다. 전공 서적이나 읽어야 할 논문들이 다 영어로 되어 있어 처음 수업 들을 때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수업 자체도 영어로 많이 진행되기 때문에 영어에는 미리 익숙해지면 좋을 것 같다.
Q. 전공 수업 중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있다면?
요즘 발달심리학 분야를 가장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다. 발달심리학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죽는 순간까지 겪는 다양한 변화들을 심리학적으로 다룬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신체적·인지적 발달뿐 아니라 정서적·심리 사회적 발달을 보인다. 지금까지 나의 발달 과정을 돌아보며 나의 정체성을 통찰해보는 것이 흥미로운 부분이다.
Q. 향후 학업이나 진로와 관련된 개인적인 계획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상담해주고 싶어 오는 11월에 심리학과 교직 이수를 신청할 계획이다. 심리학과 학업 외에도 어학과 데이터 관련 기술 등을 꾸준히 배워 미래에 만날 학생들에게 많은 경험담을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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