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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수시 합격생 인터뷰] 이화여대 심리학과 이어진

“심리학이 알려준 편견 없는 이해, 세상이 달리 보여요”

이어진 | 이화여대 심리학과, 경북 문경여고 졸업

 

인문 계열이긴 하지만 과학탐구 자율동아리를 기획하고 만들어 활동을 주도하는가 하면, 학교에서 주최하는 과학 포트폴리오 대회나 수학·과학탐구 대회도 가리지 않았다. 자기소개서 작성과 수능 공부로 바쁜 여름방학엔 겁 없이 500쪽이 넘는 두꺼운 과학서로 진행하는 독서 토론 활동에 어들기도 했다. 계획 없이 내키는 대로 생활한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함도 잠시, 막상 수시 원서를 써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자 그동안의 모든 활동이 ‘심리학’이라는 한 방향을 향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뭐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일단 벌리지 않고는 못 배겼다”는 이화여대 심리학과  이어진씨. 그의 합격 스토리가 궁금하다.

 

취재 홍정아 리포터 jahong@naeil.com

사진 이의종

 

 

심리학으로 통하는 고교 3년의 학습과 활동들

 

심리학과의 만남은 중1 겨울방학 때 재미있게 본 한 편의 드라마에서 출발했다.

“배우 지성이 주연으로 나온 <킬미힐미>에서 다중인격장애라는 걸 처음 접했어요. 그때만 해도 정신건강의학과 심리학의 차이가 뭔지조차 전혀 몰랐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아, 이런 학문도 있구나’ 하고 흥미를 느꼈죠. 고등학교에 와서는 공부보다는 하고 싶은 일들을 앞뒤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며 지냈어요. 호기심이 많아 무작정 일을 벌리기도 좋아했고요.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공부나 활동들을 들여다보니 하나같이 심리학과와 연관 있는 것들이더라고요.”

자연스럽게 고교 3년간 학생부 진로 희망 란에는 ‘심리학자’라고 적혀 있었다. 수시 원서를 쓸 무렵, 학생부를 출력해 꼼꼼히 읽었다. 당연한 것인지 모르지만, 동아리나 진로 활동은 물론 교과 연계 활동이 가리키는 방향의 끝엔 모두 심리학이 있었다. 이화여대 미래인재 전형으로 합격한 심리학과를 최종 선택했지만, 나머지 5장의 수시 원서도 모두 심리학과로 지원했다.

“수학에 자신이 없는 편인데, 심리학이 대학의 교육 편제상 인문 계열에 속해 있는 것도 제겐 행운이에요. 물론 인간의 행동과 심리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려면 앞으로 수학과 더 많이 친해져야겠지만요. 공부할 게 많아 힘들 것 같기도 하지만, 반대로 분야를 넘나들며 폭넓게 공부할 수 있는 열린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방대한 과학서 완독 도전으로 배운 것

 

의무감이나 강제로 뭘 하는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활동이나 알고 싶은 공부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넘치는 열정을 보이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선생님께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는 얘길 들었을 정도다.

“3학년 <한국지리> 시간에 간단한 발표 수업 활동을 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5분 정도 개념 설명만 하고 끝내는 발표를 저는 20분 넘게 열변을 토하며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옛 선조들의 산지 인식 체계와 풍수지리관까지 공들여 조사하고 발표했는데, 그땐 정말 그 내용에 호기심이 생겼고 탐구하는 과정이 재미있더라고요. 대체로 그 과정의 끝에는 나만의 깨달음이라고 할까요, 설명하기 힘든 희열이 있어요.”

3학년 여름방학 때 참여한 독서 토론 활동도 같은 이유였다. 방대한 분량의 책을 완독하는 도전을 해보고 싶었고, 그동안 잘 몰랐던 우주의 탄생과 생명의 진화에 대해 친구들과 토론하고 싶어졌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는 두꺼운 과학책을 하루 50~70쪽 씩 읽고 2주간 토론하는 일정이었어요. 제가 유일한 문과 학생이었는데, 주변 친구들은 굳이 그걸 왜 하냐는 반응이었죠. 하지만 전 너무 흥미진진했어요. 멸종은 생명 다양성의 측면에서 부정적인지, 생물학적 결정은 윤리적인지 등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이 특히 재미있었고요. 과학도 권력과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주관을 개입해 자연현상을 해석하는 학문이라는 사실도 배웠고요.”

어진씨는 생각지도 않은 심화 학습의 결과에 대해 “그냥 이 자리에 굴을 파고 싶어 무작정 땅을 팠는데,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값진 보물을 발견하는 행운”이라고 표현했다.

 

 

 

셀카 집착에 대한 편견 깬 탐구 활동

 

“정시보다는 수시에 강점이 있는 학교 분위기도 제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주제별 글쓰기나 발표대회는 물론이고, 주기적으로 열렸던 인문 융합 특강과 세계 이해 교육 등 마음만 먹으면 참여할 수 있는 교내 행사가 풍성했거든요. 제가 자율동아리를 조직해서 하고 싶은 연계 활동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런 학교 시스템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2학년 때 만든 자율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셀카 집착이 청소년의 외모 만족도와 자아 존중감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탐구 활동을 진행했다. 선행 연구 자료와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같은 학교 친구 28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해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까지 녹록지 않은 과정이었다.

“셀카에 대한 집착이 클수록 자신의 외모 만족도와 자아 존중감이 낮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설문을 진행했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어요. 친구들의 설문을 분석한 결과 셀카 집착은 외모 만족도와 관계가 있었지만, 자아 존중감과는 유의미한 관련이 없었죠. 가설이 잘못된 이유를 되짚어나간 끝에, 보정 셀카로 꾸며진 SNS 자아에 대한 ‘자기 선망’ 때문에 외모 만족도가 높게 나왔다는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가설을 세우고 ‘결과’에 끼워 맞추는 방식이 아니라, 아무 편견 없이 연구 결과를 대하는 ‘과정’과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학생부 자율동아리 활동 란에 두 줄로 간략히 적혀 있는 내용이지만, 이때의 교훈과 깨달음은 자기소개서 2번 문항을 가득 채울 정도로 어진씨에게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실행에 옮기지 못한 자퇴, 슬럼프를 극복하기까지

 

“고등학교 3년 내내 다문화가정 아동 멘토링 교육 지원 활동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배우고 느낀 점이 정말 많아요. 아이들을 통해 상대의 ‘속도’와 ‘보폭’을 유심히 관찰하고 발을 맞춰 함께 걷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죠. 그러고 보니 알겠더라고요. 제가 학교생활 안에서 느끼고 경험한 것들 대부분이 심리학 연구자가 지녀야 할 태도인 ‘이해’와 ‘성찰’을 품고 있다는 것을요.”

일찌감치 희망 학과를 정하고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지만, 그렇다고 슬럼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실행에 옮기진 못했지만 진지하게 자퇴를 고민한 시기도 있었다고.

“1학년 땐 ‘하고 싶은 것’만 하며 노느라(?) 공부를 소홀히 했어요. 2학기 성적표를 받아보고 좌절을 느꼈죠. ‘이대로 가다간 정말 대학에 못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고 대학 진학이 아닌 다른 길을 찾을까 하는 답 없는 방황을 잠깐 했어요. 자습 시간에 엎드려 자고 제가 좋아하는 BTS 덕질을 하거나 놀며 딴짓을 해 친구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고요. 다행히 마음속 얘길 꺼내놓기 시작하니 해결의 기미가 보이더라고요. 부모님, 선생님들과 얘길 많이 나누면서 차츰 마음을 잡을 수 있었어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또 물으면서 저 자신과 대화를 많이 한 시간이었습니다.”

 

 

대학에서 만난 심리학의 세계

 

그토록 원하던 심리학과 대학생이 되어 보낸 지난해, 코로나19 때문에 대면 수업을 하지 못한 아쉬움은 크지만 나름대로 보람 찬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땐 활동 보고서를 쓰거나 교과 연계 활동을 할 때 늘 선행 연구 자료와 데이터를 확보하기가 어려워 애를 먹었어요. 그래서 대학에 가면 심리학에 관한 모든 통계자료를 찾아 마음껏 더 깊이 공부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컸죠. 그런데 막상 대학에 와보니 심리학에서 뻗어나가는 학문이 정말 다양하고, 제가 모르던 새로운 분야의 공부할 거리에 자꾸 눈이 가네요.”

주도적인 학교생활은 대학에 와서도 여전하다. 동아리 활동은 물론이고 단과대학 학생회 활동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1학년 1학기에 교양 과목으로 수강한 <나눔 커뮤니티 가드닝> 과 <노동과 젠더> 수업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매 수업을 마친 다음, 온라인 게시판에 수업 후기나 소감을 적고 동기들과 토론하기도 했는데, 그 과정 안에서 내 생각이 정리되면서 이런 게 바로 진짜 공부구나 하고 느꼈죠.”

심리학 공부에 대한 열정은 변함 없지만, 아직 구체적인 진로는 정하지 않았다. 입시가 코앞에 있을 때도 포기할 수 없었던 ‘내가 끌리는 것에 대한 탐구’를 대학 안에서 더 즐겨볼 생각이다.

“미래의 제 모습을 상상해보면 심리학을 기반으로 이런저런 탐구 활동을 하는 연구자가 돼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새로운 분야에 대한 탐색은 끊임없이 이어갈 겁니다. 한동안 평일 저녁 7시부터 시작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아주 중요하면서도 흥미로운 일과였어요. 일하면서 벌레에 물리기도 하고 힘들긴 하지만 조금은 낯선 분야인 경제와 생산 활동, 돈을 버는 즐거움과 가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됐답니다. 하하.”

 


나를 보여준 학생부 & 자기소개서

 

학생부

1학년

▒ 동아리 활동 
자율동아리 활동을 통해 새 학기 증후군, 월요병 등 심리적 불안정에서 비롯된 병에 대한 영어 신문기사를 작성하고, 교내 곳곳에 게시함. 영어 신문 읽기반 안에서 영어 신문을 읽고 부원들과 이슈에 대해 토론함

▒ 진로 활동 
교육대학 특강에서 교육과 대학생들이 배우는 과목 중 교육심리학이 있다는 얘기를 흥미롭게 듣고 심리학이 모든 분야와 연결돼 있으며 그 활용 방법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고 깨달음. 심리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진로를 구체화해 심리학과 연계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골고루 쌓으며 학업에 더욱 매진하는 계기를 마련

 

2학년

▒ 자율 활동 
영어 스피치 행사에 참가해 동서양의 사고방식 차이를 비교문화 심리학적으로 설명한 책을 읽고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는 문화상대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편견을 깨야 한다고 깨달음. 더 나아가 ‘The Root of Prejudice’를 주제로 다름을 인정하는 환경에서 사회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발표함

▒ 동아리 활동 
<인사이드 아웃> 속 심리학적 요소를 분석하면서 프로이트의 마음의 위계 이론을 접하고 무의식과 기억의 관계를 심층 연구함. 구글 폼 설문조사를 활용해 수집한 학생들의 의견을 통해 인문학적 의미가 숨어 있는 학교 내 일상적 요소들을 찾아내는 ‘생활 속 인문학’ 프로젝트를 기획해 진행함

 

3학년

▒ 자율 활동 
과학 독서 토론 교실 활동으로 우주의 탄생과 생명의 진화 연구에 대한 사회과학사적 발전 과정을 설명한 도서를 읽고 느낀 점과 의문점 등을 일일 개요서로 작성함. 토론 과정에서 자신의 편견과 통념을 교정하고 기존의 주장이 틀릴 수 있다는 칼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 태도를 배움

▒ 봉사 활동 
초등 저학년 다문화가정 아동을 격주로 방문해 교육 봉사를 할 때 다름에 대한 편견을 깨자는 메시지 전달 과정에서 등장한 자극적인 영화 대사에 문제의식을 느낌. 이에 아동에게 외모지상주의의 조장과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콘텐츠 비판 보고서를 작성함

 


자기소개서

▒ 1번 학습 경험 

<인문학은 언어에서 태어났다>라는 책을 통해 배운 연구자의 ‘이해’의 태도에 대해 정리했다. 2학년 영어 시간에 ‘doubt’ 의 어원에 대한 영상을 흥미롭게 보고 단어의 유래에 관심이 생겨 책을 찾아 읽게 된 계기, 그 과정에서 어원과 다른 의미로 발전하는 단어들, 어원 속에 담긴 문화, 음식, 역사에 이르기까지 ‘총체론적 관점’을 접한 ‘셀카 집착’ 탐구와 함께 경험을 풀어썼다.

▒ 2번 교내 활동

‘교권과 학생 인권이 상호 존중되는 학교 문화’를 주제로 한 교내 모의 학생자치법정에 참가해 과벌점 학생의 평소 불성실한 태도를 근거로 논쟁한 경험에서 배운 심리학자의 태도를 담았다.

▒ 3번 배려 나눔 협력 갈등 관리 

고등학교 3년 동안 진행한 다문화가정 아동 멘토링 교육 지원 활동에서 만난 초등학생의 한국어 능력 향상을 돕는 과정의 에피소드를 정리했다. 동화책 읽어주기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언어 능력 수준에 눈높이를 맞추니 교육 효과가 한결 향상된 경험을 적고, 온전히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이 ‘배려’라는 점을 느꼈다고 적었다.

 


교사의 시선으로 본 수시 합격생

“사물이나 현상을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학생” 

 

어진이가 2학년이었을 때 담임과 국어 과목을 맡았고, 3학년 때도 제가 국어를 가르쳤어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마음 맞는 친구들을 모아 아주 주도적으로 동아리를 조직하고 활동하던 모습이에요. 학교에 자율성 강한 학생들이 많았지만, 그쪽 분야로는 단연 어진이의 자질이 탁월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대할 때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떠오르고요. 그 안에서 생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탐구하는 역량도 갖춘 학생이었죠. 필요할 때마다 찾아와 상담을 신청하기도 했는데, 마음속 얘길 진지하게 먼저 꺼내고 겸손하게 조언을 구하는 태도가 인상 깊었죠. 이제 원하던 대로 심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됐으니 지금 모습 그대로 본인이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하면 좋겠어요. 훌륭한 연구자로 성장할 거라 확신합니다.

 

_ 2학년 담임 박명기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