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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수시 합격생 릴레이 인터뷰] 김예현 이화여대 사학과

 <세계사> <동아시아사> 배우며 역사 제대로 알리는 기획자 꿈꿔 

김예현 | 이화여대 사학과 (서울 숭의여고) 

 

역사를 좋아했지만, 처음부터 전공까지 염두에 두진 않았다. 하지만 좋아하는 걸 함께 나눌 수 있는 직업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초등 교사를 꿈꿨다. 초등학생들과 역사 유적지를 탐방하고 숨은 역사·위인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세계사> <동아시아사> <생활과 윤리> 등의 사회 교과를 배우며 역사에 관한 예현씨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역사를 깊이 있게 공부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또는 잘못 알려진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기획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사학과 진학을 마음먹었다. ‘사학과는 취업이 안 된다’고 하지만 대학에서 못한다면 어디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겠냐며 당차게 웃는 예현씨는 수시 5장을 사학과에 지원했다. 

 

취재 민경순 리포터 hellela@naeil.com

사진 이의종

 

 

김예현 ❘ 이화여대 사학과 (서울 숭의여고)

 


 

선생님과 함께한 덕수궁 탐방, “역사를 재미있게 전하고 싶다” 

 

<한국사>는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지만 전공까지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사><세계사> <동아시아사> 등의 사회 교과를 배우면서 선생님들의 스토리텔링에 흠뻑 빠져들었다.

 

“대체 선생님들은 이런 숨겨진 이야기를 어떻게 아실까? 이보다 흥미진진한 게 있을까? 선생님처럼 내가 알고 있는 역사 스토리를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1 때 선생님이 덕수궁 탐방 신청을 받았어요. 그런데 신청자가 저와 제 친구 단 둘뿐이었어요. 주말에 덕수궁 탐방이라니 역사에 관심 없는 아이들에겐 끌리지 않는 제안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저에겐 너무나 특별하고 재미난 경험이었죠.”

 

예현씨는 그때의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초등 교사가 돼 아이들을 데리고 고궁이나 유적지를 탐방하며 옛이야기 전하듯 우리의 역사를 들려주고 싶었다.  

 

“고2가 되면서 초등 교사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역사 기획자나 PD, 역사학자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그때 사학과와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을 두고 고민했어요. 인문 계열은 대학이 우선이라는 현실적인 조언과 진짜 공부하고 싶은 전공을 우선으로 둬 사학과에 지원했죠.”

 

예현씨는 종합전형으로 이화여대 경희대 건국대 숭실대 숙명여대 사학과를, 교과전형으로 성신여대 법학과를 지원했다. 이 중 이화여대만 유일하게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적용했다.경희대 외 5개 대학은 최종 합격했다.

 

“수능에 집중하지 않았기에 사실 수능 후 가채점을 하지 않았어요. 6월과 9월 모의평가에서 이화여대 최저 기준인 3합 6을 맞추지 못했기에 큰 기대를 할 순 없는 상황이었죠. 수능 성적표를 받고 10분쯤 후에 확인했는데 3합 6을 맞췄더라고요. 정말 기뻤어요.(웃음).”

 

 

학생부는 3년간의 노력 담긴 나만의 성장 일기

 

예현씨는 한 번의 수능으로 평가받는 정시보다는 3년간 해온 학교생활로 평가받는 종합전형을 염두에 뒀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만큼 역사 관련 서적을 읽을 때면 다른 교과와의 연계성을 고려했고, 각 과목의 자유 발표 시간을 적극 활용해 진로에 대한 관심을 표출했다.

 

<독서> 에서 <임경업전>을 배운 뒤 배경이 된 ‘병자호란’을 조사해 작품 속 주인공을 분석하고, <수학>에선 조선 시대의 세금 책정에 쓰였던 수학 개념과 수학자 홍정하의 <구일집>에 소개된 방정식 풀이법과 구의 부피 계산법을 소개했다. <한국지리>에서는 <역사가 묻고 지리가 답하다>를 읽고 한양을 설계할 때 고려했던 풍수지리적 사상과 지형적 요건, 강화도의 지리적 특성이 된 역사적 사건 등을 발표하며 관심을 다양하게 뻗어갔다. 

 

<통합과학> 시간에는 산·염기 중화반응을 학습하며 조선 시대 법의학 서적인 <무원록>에 기록된, 상흔 검안 시 감초즙을 활용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역사 속 공주, 여성에 대한 관심도 많았어요. 사극을 보면서 궁녀, 후궁, 왕비 등 여성들의 궁에서의 사생활 그리고 남성 중심 사회에서의 왕비의 역할과 한계도 궁금했거든요. <왕비로 산다는 것> <왕의 여자> <왕비의 하루> 등 관련 책들을 읽으며 사극에서 알 수 없었던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어요. 정명 공주를 통해 인조반정이 일어난 과정이나 인목 대비와 광해군의 관계도 살펴봤고요. 참, 조선 최고의 땅 부자였다는 것도 알았죠.  <세계사>에서 1차 세계대전을 배울 땐 여성 참정권 운동의 시작점이 됐던 에밀리 데이비슨에 대해서도 알게 됐어요.”

 

처음엔 과목들과 역사의 접점을 찾는 게 쉽지 않았지만, 교과서의 단원 끝에 나오는 읽을거리나 궁금한 내용의 꼬리 물기식 독서 등을 통해 호기심을 확장해나갔다. 

 

“3년간 발표했던 보고서의 주제와 내용은 요약해서 표로 작성했어요. 그랬더니 제가 언제 어떤 내용에 좀더 관심을 가졌는지 한눈에 보이더라고요. 확장해 주제를 정하기도 좋고요. 고2∼3학년 때 <한국지리> <세계사> <사회·문화> <생활과 윤리> <동아시아사> 등을 배우며 역사와 사회 그리고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을 뿐만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죠.”

 

 

수학 약점, 강점인 사회·영어 교과로 만회

 

고1 때에 비해 고2∼3학년 때 성적이 많이 상승했다. 다만 숭의여고가 과학중점학교다 보니 수학 과학에 강점이 있는 친구들이 일반 여고보다는 많은 편이라 수학 성적을 올리기가 어려웠다. 

 

“모든 과목을 잘할 순 없겠더라고요. 좋아하는 과목에 집중했어요. 수학은 평균만 하자고 생각했고, 영어와 사회 교과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어요. 사회 교과는 과목에 관계없이 좋았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역사 그리고 인간의 삶을 다루니 너무 재밌는 거예요. 성적도 오르니 공부할 맛도 나더라고요. 사실 저에게 사회 교과는 성적을 올려주는 효자 과목이었죠. <한국지리> <세계사> <사회·문화>를 비롯해 <생활과 윤리> 를 2학년 때 배웠고, 3학년 때는 <동아시아사>를 선택했어요. <동아시아사>는 선택 인원이 20명밖에 되지 않아 내신 등급에 대한 압박이 있긴 했지만, 흥미로웠어요. 수능에서는 선택자가 가장 많은 <사회·문화>  <생활과 윤리>를 선택했다가 6월쯤 <동아시아사>와 <세계사>로 변경했어요. 자신에게 맞는 과목이 따로 있더라고요. 수업 시간에 열심히 해뒀기에 변경에 대한 부담은 없었어요. <언어와 매체>도 2학년 2학기에 꼼꼼하게 배워둔 덕분에 수능 공부가 크게 어렵지 않았죠.”

 

예현씨는 2학년 1학기 때 선택했던 <한국지리> <세계사> <사회·문화>는 모두 1등급을 받았고, 2학기에도 <한국지리>는 1등급, <세계사> <사회·문화>는 2등급을 받았다. 영어는 2등급을 받다가 3학년 1학기에 1등급을 받으면서 전체적인 성적을 크게 끌어올렸다. 

 

“잘하는 걸 좀 더 잘할 수 있도록 집중했는데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과목을 선택할 땐 선택자 수보다는 내 적성에 맞는 과목을 택하는 게 지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비결 같아요. 공부하면서 더 배우고 싶은 것도 생기고요. 작성했던 보고서의 주제나 수업 시간에 궁금했던 것들을 평상시에 기록해두는 습관도 도움이 됐죠. 고교 3년간 종합전형을 준비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지나고 보니 기록이 돼 제 성장 일기처럼 남더라고요. 정시에 대한 기대가 클 수 있지만, 재학생이라면 종합전형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요. 노력한 만큼 배우는 것도 많고 대입에서 든든한 무기가 되거든요.”

 


 나를 보여준 학생부 & 선택 과목 

 

 의미 있었던 선택 과목 

 

 ▒ <생활과 윤리> 여러 철학자의 사상을 배우면서 그 시대가 어떻게 비슷하고 다른지를 비교하며 공부하는 것이 좋았다. 인간의 삶에 관심이 많아 철학가들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고민하고, 서양에는 비슷한 사상을 지닌 철학자가 있는지 관심을 가졌다. 

 

▒ <세계사> <동아시아사> 역사에 관심이 많아 사회 교과가 잘 맞았고 공부하면서 매우 재미있었다. 역사는 단순 암기나 지식보다는 흐름으로 공부해야 하는데 스토리텔링 형식의 수업을 받으며 더 흥미를 갖게 됐다. 

 

▒ <고전읽기> <고전과 윤리> 고전을 통해 과거 역사 속에 종교나 사상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관점에 따라 역사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했다.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1학년 

 

<수학> 학년말 발표 활동에서 조선 시대에 농업, 토지와 세금 책정에 쓰였던 수학의 개념을 소개, 조선의 수학자 홍정하의 <구일집>에 소개된 방정식의 풀이법과 구의 부피 계산법을 소개해 흥미를 끌어냄 <통합과학> 산·염기 중화반응을 학습하며 조선 시대 법의학 서적인 <무원록>에 기록된 상흔 검안 시 감초즙을 활용한 내용을 확인하는 등 통합적 사고가 뛰어남

 

 

 2학년 

 

<세계사> 수업 시간에 높은 집중력과 적극적인 태도로 교사와 상호 작용하며 역사적 탐구력과 사고력이 높아 사료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남 <사회·문화> 동학농민운동은 기존 사회 질서인 신분 제도 및 지배층의 부패 등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사회 운동이라 판단했고 진화론과 순환론의 관점에서 전근대사회를 분석함

 

 

 3학년 

 

<독서> 역사란 결국 인간이 만드는 것이기에 그 안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생각함, 독립운동가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오늘의 자신이 있음을 감사하며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알리기 위해 카드 뉴스 제작 <동아시아사>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가 동아시아 격변의 시기에 영원한 주변인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점을 조명

 

 

 

 교사의 눈으로 본 수시 합격생 

 

코로나19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유난히 한국사 수업에 집중한 학생이었어요. 역사를 포함해 사회 교과에 관심이 많다고 소개했지만 처음에는 열정만 한가득인,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에 가까운 모습이었죠.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열정에 노력이 더해져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2학년 때 고등학생 토론 대회를 준비시킨 적이 있었는데, 논리 하나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양의 책을 읽고 정보를 수집하는 모습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3년간 교과 성적도 크게 향상되었고 역사에 대한 인식과 지적 수준도 상당한 진전을 보였어요.  예현이는 목적이 이끄는 삶처럼 열정과 관심이 학교생활을 이끌고, 장점과 실력으로 역량을 쌓은 학생이라 평가할 수 있어요.  예현이가 10~20년 뒤 대학 강단과 역사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훌륭한 연구자로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_ 정제원 교사(서울 숭의여고, 사회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