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에서 출발한 호기심, 환경 문제와 자원 분쟁으로 확장
김유빈 | 서울대 재료공학부, 서울 배명고
과학 중에서 화학을 유달리 좋아했다. 화학자가 꿈이었던 유빈씨는 신소재공학 전공 특강을 통해 신소재의 다양한 발전 가능성을 알게 되었고 신소재공학, 재료공학으로 진로를 구체화했다. 고2 땐 배명고의 기숙사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공부의 주체가 되어 깊이 있는 공부를 했고, 여러 과학 실험을 직접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서 수시 전형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과학에 관한 관심 못지않게 과학적 성과의 이면에도 집중했던 유빈씨는 학생부 곳곳에서 인문학적 역량을 드러냈다. 성실, 끈기, 도전으로 정의할 수 있는 유빈씨의 고교 3년간의 스토리를 담았다.
취재 민경순 리포터 hellela@naeil.com
사진 이의종
화학을 기반으로 물리학과 생명과학 사이 고민
화학을 배울수록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재미있었다. 어릴 적 다양한 키트로 해봤던 실험들이나 과학 관련 책들은 유빈씨의 호기심을 더 끌어올렸다. 때론 고장 난 휴대전화나 전자기기를 분해해 소생 불가 상태를 만들기도 했지만, 자료를 탐색하고 실험하며 지적 호기심이 해결됐을 때의 성취감은 컸다. 진로는 당연히 공학 계열을 생각했다. 물리학, 화학 베이스의 공학이냐 화학, 생명과학 베이스의 공학이냐를 두고 고민했다.
“화학을 좋아해 처음엔 화학공학과를 생각했는데 학과명에만 화학이 들어갔지, 물리 공부가 주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요. 화학을 일단 선택하고 물리학과 생명과학 중 어떤 걸 해야 할까 고민했어요. 의대는 처음부터 생각이 없었고, 전자기, 재료, 신소재 분야에 관심이 있어 생명과학 대신 물리학을 선택했죠.”
신소재공학과 재료공학은 사실 다루는 범위의 차이일 뿐 비슷하다.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등 시대의 이름 앞에 재료가 붙을 정도로 재료는 사람들의 삶에서 중요하다. 자연 상태의 재료들을 가공해 우리가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재료공학자의 역할이다. 즉, 재료, 금속, 바이오 등 각종 재료의 기능과 특징을 공부하고, 재료의 개발, 가공, 제조 기술을 배운다. 신소재공학은 재료 중 생체, 기능, 환경, 첨단 소재 등에 좀 더 집중하는 학문이다.
“대학에 따라 재료공학 또는 신소재공학이 개설돼 있었어요. 재료공학이나 신소재공학을 지원한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화학생명공학과도 함께 지원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모두 화학과 물리학 중심의 학과라 그런 것 같아요. 화학생명공학은 학과의 시작이 석유 화학과 관련된 경우가 많아요. 전 디스플레이나 배터리에 관심이 많아 화학생명공학은 생각하지 않았죠.”
학교에서 찾은 실험·탐구 주제
화학에 관심이 많아 학교 수업에서 배우는 이론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던 지적 호기심은 화학실험반 동아리나 자율동아리 활동을 통해 채워나갔다. 특히 기억에 남은 실험은 결정 성장 만들기였다.
“백반을 천천히 녹이면서 포화 수용액을 만들어요. 포화 수용액을 가열하며 백반을 녹여주는 거죠. 포화 용액이 식으면서 용해도가 내려가는데, 이때 과포화된 양만큼 용질의 입자가 석출되면서 결정이 형성되는 거예요. 포화 수용액을 넣어가며 일주일 정도 관찰했는데 결정들이 달라붙으면서 커졌더라고요. 간단한 실험인데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관찰하는 과정이 재미있었죠. 반도체에서 실리콘 웨이퍼를 만들 때 이와 비슷한 원리가 사용돼요.”
유빈씨는 실험 주제나 과학탐구 주제를 학교생활에서 찾았다. 고1 때 화장실에서 손을 씻던 중 녹물이 나와 수도관 부식 관련 주제로 탐구 대회를 준비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녹물 속 납의 농도를 측정했어요. 황화납을 활용해 앙금 생성 반응을 관찰했는데 아연 이온 농도가 높아져 납 이온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분광광도계로 흡광도 데이터를 측정해 납의 농도를 계산했죠. 그 결과 6개의 건물 중 4곳에서 기준치가 넘는 납 농도가 검출됐어요.”
고1 때는 납 농도를 측정하는 여러 방법으로 탐구 대회에 참가했다면, 고2 때는 해결책을 찾는 실험을 진행했다. 황산화물질인 퀴세틴이 금속 부식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제 퀴세틴이 철과 반응해 흑색 산화 피막을 만들어 부식을 방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퀴세틴을 함유한 양파 껍질 추출물과 올리브유 등을 철에 발라 부식 속도를 측정했다.
“한 가지 주제를 2년 동안 고민했어요. 제 지식이 깊지는 않지만, 논문이나 여러 자료를 찾아보며 평소 가졌던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많은 고민을 했어요. 거창한 주제가 아니라 평소 생활에서 궁금했던 것들이나 불편했던 것들부터 시작했더니 궁금증이 해소되는 건 물론 그 과정 자체가 즐겁더라고요.”
과학의 발달, 개발 이면의 사회 현상에도 관심
사회 교과에서는 각 대륙이나 국가별 자원 개발 현황 등을 다루는 <세계지리>를 선택했다.
“<세계지리> 시간에 콜탄이라는 생소한 자원을 배웠어요. 콜탄은 휴대전화나 축전기 등 전자기기의 핵심 재료로 쓰이는 탄탈룸의 원료예요. 콩고에는 전 세계의 70~80%에 달하는 콜탄이 매장돼 있는데 인접 국가나 선진국이 콜탄 약탈을 위해 끊임없이 내전을 일으켰어요. 노동력 착취 등 강대국과 자국민 사이의 갈등, 무분별한 자원 경쟁, 자원 개발의 이면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죠.”
코로나19로 필수가 된 마스크, 유빈씨는 마스크의 재료가 폴리프로필렌인 것을 알고 폐기물 처리 문제를 고민했다. 석유에서 추출한 폴리프로필렌은 땅에서 완전히 자연 분해되기까지 수천 년의 시간이 필요하고, 쓰레기 소각 과정에서 맹독성 화학 물질인 다이옥신이 방출되기 때문. 유빈씨는 생분해성 부직포를 사용해 마스크를 자연에서 쉽게 분해되도록 만들고, 마스크 표면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막을 통과하지 못하고 사멸될 수 있도록 구리를 코팅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개발과 함께 사회 변화, 인류를 생각하는 유빈씨의 융합적 사고는 서울대 자기소개서 4번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에서도 잘 드러났다.
“공학도는 기술뿐 아니라 사회, 인간, 윤리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소개서에 쓸 책 3권을 고를 땐 과학과 함께 기술 개발의 이면, 사회 윤리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싶어 <세상을 바꾼 12가지 신소재 이야기> <침묵의 봄> <과학은 이것을 상상력이라고 한다>를 선택했어요.”
배우고 싶어 선택한 과목, 결과도 따라온다
배명고는 일반고지만 기숙사를 운영한다. 집에서 학교가 멀지 않았지만, 고2 때 기숙사에 들어갔다.
“필요한 학원은 수요일과 주말을 이용해 다녔어요. 학원에 의지하지 않고 계획을 세우고, 공부해나가는 게 처음엔 불안하고 어렵더라고요. 그러다 찾은 방법이 단권화였어요. 개념이 잘 정리된 기본서를 한 권 고른 뒤 필요한 내용을 다 담는 거예요. 그 책만 보면 모든 내용이 담겨 있을 정도로 문제를 풀다가 알게 된 내용이나 선지 함정을 꼼꼼하게 적었어요. 선후배들과의 기숙사 생활은 더불어 성장하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과목별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을 알차게 채울 방법을 묻자, 수업을 충실하게 들으라고 당부했다. 진로와 연계할 수 있는 주제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해당 과목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유빈씨다.
“<문학> 시간에는 이청준 작가의 <줄>을 읽고 과학 원리를 도출해 발표했어요. 소설 속에서 한 노인이 줄을 타다가 떨어지는데 크게 다친 거예요. 그냥 대수롭지 않은 장면이었지만, 이때 노인이 크게 다치려면 어느 정도 높이에서 어느 정도의 힘으로 충격을 받아야 할까를 계산했어요. 실제 그런 계산법이 있더라고요. 하하.”
유빈씨는 <확률과 통계>를 배우면서 화학 시간에 배운 오비탈의 확률 밀도 함수 그래프를 적용해 탐구했다. 3차원 입체 그래프는 보통 지오지브라 프로그램을 활용하지만, 함수 그래프는 ‘데스모스’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확률과 통계> 담당 교사는 학생부에 “처음에는 무모하게 보여 고교생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권유했지만, 스스로 하나하나의 과정 중 오류를 찾고 가설을 세워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끝까지 노력하는 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됨”이라며 궁금한 것을 끝까지 파고드는 유빈씨의 역량을 기록했다. 유빈씨는 고교 3년을 너무 입시적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내실 있게 공부하라고 당부했다.
“선택 인원이 적어서, 어려워서 등의 이유로 피하기보다는 자신이 배우고 싶은 과목은 꼭 선택하면 좋겠어요. 물론 학업 부담은 되죠. 그렇지만 자기가 좋아하고 배우고 싶은 호기심에 신청한 과목은 열심히 하게 돼 있어요. 결과도 어느 정도는 따라오는 것 같아요. 고교에서의 다양한 경험이 버겁고 지치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들이 진로를 찾아가는 디딤돌 역할을 하더라고요.”
나를 보여준 학생부 & 선택 과목
학생부
1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과학 토론 활동으로 터키 아타튀르크 댐 건설로 인한 여러 국가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댐에서 떨어지는 피텐셜 에너지를 이용한 역삼투 방안을 고안함, 신소재공학 전공 특강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신소재의 발전 가능성을 확인하고, 관심을 갖기 시작함.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국어> 토론과 협상 활동에서 우수한 논리력과 의사소통능력을 보여줌, <수학> 함수와 역함수가 y=x에서 교점을 갖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고 고민함, 문제를 증명하고 풀어가는 수학적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남, <영어>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 선거 시스템 차이 등 어려운 선거법을 시각자료를 준비해 쉽게 설명함.
2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화학실험반> 다양한 화학 관련 실험을 하며 일생생활 속 화학 원리를 찾아냄, 실험 후 실험의 원리와 궁금증, 앞으로의 활용 방안까지 생각해 보고서를 제출함.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언어와 매체> 열정적이고 탐구심이 강해 가장 질문을 많이 하는 학생으로, 질문의 수준이 높음, <수학Ⅱ> 궁금한 점이 생기면 독서 활동을 통해 교과 과정 이상의 내용을 스스로 탐독하고 교사와의 질의응답을 통해 학업적인 갈증을 해소함, <세계지리> 세계의 자원과 분쟁에 대해 공부한 뒤 콜탄이라는 생소한 자원에 관심을 가짐, 스마트폰에 활용되는 콜탄으로 인한 내진과 분쟁 그리고 생산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등 창의융합적인 사고를 지닌 학생임, <화학Ⅰ> 디스플레이 구조의 원리를 발표하고 반딧불이를 통해 디스플레이의 발광 원리를 설명함.
3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화학실험반> 마스크의 재료가 폴리플로필렌인 것을 알고 분해성 부직포를 만들어 자연에서 쉽게 분해되도록 함, 구리가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막을 사멸시키는 원리를 이용해 표면을 구리로 코팅한 마스크를 제시함,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과학의 다양한 분야를 융합하여 해결하는 모습이 인상적임.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독서> 콩고 내전의 원인이 ‘콜탄’이었던 것처럼, 자원이 분쟁 요소가 될 수 있는가를 바라보는 견해의 차이를 조사하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주제 통합적 읽기를 수행함, <확률과 통계> 확률 밀도 함수 그래프가 초월 함수로 근사한다는 것을 알아내고 특정 분포를 가지는 원자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어떤 입자인지를 탐구함, 실제 오비탈의 확률 밀도 함수를 적분하여 값을 도출해냄.
선택 과목
▒ <고급화학> 화학에 관심이 많아 공동 교육과정으로 선택한 과목이다. 원자의 양자역학적 모형, 전이 금속과 배위 화합물, 엔탈피와 엔트로피, 화학 평형, 탄소 화합물 등 심화된 화학 개념을 배웠다. 독서 주제 발표로 <첨단 과학의 신소재>를 읽고 신소재와 다양한 평판 표시 기술의 특징과 장단점을 소개했다.
▒ <세계지리> 재료공학에 관심을 두면서 자원 분포, 지형에 따른 자원의 특징과 이용 등을 배울 수 있어 선택했다.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콜탄’이 콩고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자원 분쟁에 대해 여러 과목으로 접근해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 <융합과학> 다른 교과와 융합해 과학에 접근할 수 있었다. 신소재 디스플레이에 관심이 많았는데 액정의 제조 공정부터 배열의 원리를 탐색했고 플렉시블 디스플레이까지 탐색의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 <지식재산일반> 공학 계열 진학을 염두에 둔 데다 소수 인원만 선택해 등급에 대한 부담이 있었지만, 특허에 대한 지식을 배우면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선택했다. 특허 명세서를 작성해봤던 경험이 현재 대학에서 특허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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