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채 출토된 수막새에 마음이 아파 삼각함수를 이용, 복원에 도전했어요
손윤나 | 고려대 사학과(경남 남해해성고)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의 시각으로 재창조되는 역사에 매력을 느꼈다. 신라 시대의 아름다운 기와 유물인 ‘얼굴무늬 수막새’가 깨진 상태로 출토된 게 마음이 아팠을 만큼, 역사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손윤나씨는 고려대 사학과에 농어촌 전형으로 합격했다. 역사를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지리 과목들은 물론, <지구과학Ⅰ>까지 선택해 이수했다. 역사는 인간의 일대기를 탐구하지만, 어떤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왔는지도 중요한 관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회는 ‘문송하다’고 말하지만, 역사를 통해 오히려 사회를 통찰력 있게 보는 눈을 키울 수 있다고 믿는 윤나씨에게 대학은 취업에 앞서 무엇을 공부할지에 대한 답을 먼저 내릴 수 있어야 하는 곳이었다.
취재 정애선 기자 asjung@naeil.com
사진 이의종
사인법칙과 코사인법칙을 배우며 수막새를 떠올리다
수능이 연기될 만큼 포항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을 당시 윤나씨가 <과학탐구실험>에서 발표 주제로 잡은 것은 ‘전통 한옥에 적용된 과학 기술’이었다. 한옥에 쓰이는 주춧돌과 대들보 등을 들여다볼수록 현대의 내진 설계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 듯했다. 태양의 고도를 이용한 처마와 천연 재료를 사용한 창호지는 에너지 절약과 친환경 설계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2학년 <수학Ⅰ> 수업에서 사인법칙과 코사인법칙을 배우며 윤나씨가 떠올린 것은 수막새였다. ‘신라의 미소’로 잘 알려진 ‘얼굴무늬 수막새’는 신라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지만, 일부가 깨진 채로 출토됐다.
“이렇게 아름다운 유물이 깨진 상태로 출토됐다는 게 마음이 아팠어요. 원과 삼각형의 관계를 정리한 삼각함수를 배우면서 수막새를 복원하는 데 적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두 깨진 채로 출토된 경주의 얼굴무늬 수막새와 고구려와 백제의 연꽃무늬 수막새 조각, 통일신라의 짐승얼굴무늬 수막새를 현대적 시각으로 가상 복원해보기로 했어요. 수막새의 무늬는 보통 각 나라의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나라별 무늬의 차이에 집중했죠. 박물관 홈페이지에 제공된 정보와 비교하며 지름과 반지름 등 제가 구한 값이 맞는지 일일이 대조했고요. 백제의 연화문 수막새를 복원할 때는 중국 남조와 교류했다는 역사적 배경에 따라 섬세하고 유연한 곡선 형태의 꽃잎을 표현했는데, 선생님께서 훌륭하다고 칭찬해주시더라고요. 각 나라의 상황과 문화적 특징이 유물에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사실을 다시 느낄 수 있었어요.”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고?
<사피엔스>를 읽으며 작가가 제국주의를 옹호하고 있다고 느낀 윤나씨는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약자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싶어 친구들을 대상으로 일본군 ‘위안부’를 위한 온라인 해시태그 캠페인을 진행하며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립 구도를 역사 전체로 확장해 이분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역시 ‘공정한 역사 서술’은 아닌 듯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경우는 피해자와 연대하고, 가해자를 비판하는 것이 옳아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그 경우겠죠. 한데 이런 시각이 흑백논리의 시각으로 변질돼 역사 전반에 확대되는 것은 경계해야겠더라고요.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친구들에게 제 생각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 같았어요. 누군가에 의해 서술된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사실 그 자체를 접하는 게 더 우선이겠더라고요.”
부정적 측면만 강조된 역사적 인물인 마리 앙투아네트와 나폴레옹은 그런 면에서 적절한 소재였다. 고3 학생을 주인공으로 해 ‘생각의 도서관’을 발견하면서 책을 통해 각 인물들의 과거를 체험하며 ‘기억 조각’을 모으는 게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스토리라인은 윤나씨가 잡고, 실제 게임 구현은 프로그래밍에 재주가 있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지금은 역사적 평가가 갈리는 인물들이기에 양측 입장을 모두 보여주면서 역사란 한쪽의 입장만이 아닌, 가능한 모든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어요. 이번엔 친구들도 제 의도를 잘 이해하고, 게임을 통해 이 인물들에 대해 몰랐던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다며 흥미를 보이더라고요. 역사는 객관성과 주관성이 공존하기에 사실 기반의 서술과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의견을 정확히 구분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느낀 경험이었어요.”
역사 공부를 위해 선택한 <지구과학Ⅰ>
과목을 선택할 때도 역사 공부에 도움이 될 과목들을 중심으로 골랐다. 한국사를 알아갈수록 자연스럽게 세계사에도 관심이 갔다. 윤나씨는 수능 사탐 과목에서도 <동아시아사>와 <세계사>에 응시했다.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만큼 변별을 위해 ‘시험을 위한 시험’으로 변질되어간다고 느낀 <사회·문화>나 <생활과 윤리>보다는 정직하게 공부해 문제를 푸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세계사>는 한 문제를 틀려 2등급을 받고, <동아시아사>는 1등급을 받았으니 윤나씨의 판단은 옳았던 셈이다.
남해해성고는 사회 과목을 학기제로 운영해 최대한 학생들의 선택 폭을 넓힌 곳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데 지리적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한국지리>와 <세계지리>를 선택했다. 일반선택 과목으로 석차등급이 산출되는 <세계지리>는 이수자가 23명에 불과했지만, 1등급을 받을 만큼 열심히 공부했다.
윤나씨의 선택 과목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지구과학Ⅰ>이었다.
“당시 <윤리와 사상> <정치와 법> <생명과학Ⅰ> <지구과학Ⅰ> 중에서 두 과목을 골라야 했어요. <윤리와 사상>을 먼저 정하고 난 뒤 <정치와 법>과 <지구과학Ⅰ>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인간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도 역사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관점이겠더라고요. 실제 사학과 전공 과목으로 <지구사>가 개설된 대학도 있었어요. 유물의 연대를 측정하는 데 쓰이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배우기도 했고, 학교에서 열린 지구과학 논술에서 제가 2학년 중 유일한 금상 수상자였을 만큼 <지구과학Ⅰ>은 정말 재미있게 공부했던 과목이에요.”
윤나씨가 역사교육과나 한국사학과가 아닌 사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이처럼 다양한 선택 과목 수업을 통해 역사를 좀 더 폭넓고 새롭게 접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대학에 와서 학과 세미나를 통해 여러 직업군에 진출한 선배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다시 느꼈다.
“요즘은 인문학 전공은 경쟁력이 없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사학과 선배들만 해도 기자를 비롯해 네이버 등 IT 업계에서 일하는 분 등 다양하더라고요. 사학이라는 특정 학문을 전공했지만,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사회와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통찰력 있게 바라보는 안목을 키웠기에 다양한 직종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면에서 학생들이 선택 과목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열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아요. 진로가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더라도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는 과목을 공부해나가면서 시야를 넓힐 수 있고, 어떤 공부를 더 하고 싶은지 구체화시킬 수 있으니까요. 제가 <지구과학Ⅰ>을 선택해 후회 없이 공부한 것처럼 문·이과를 구분하지 않는 열린 교육과정이 좀 더 확산되길 기대해요. 학생들이 그만큼 세상을 넓게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나를 보여준 교과 세특 & 선택 과목
학생부
1학년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국어> 일제강점기 저항 문학에 대해 탐구 보고서 작성, <수학> ‘조선시대에는 다항식을 어떻게 표현했을까’를 주제로 탐구, ‘구일집’에 포함된 천원술을 이용한 방정식의 구성과 중승계방법을 통한 방정식의 해법, 홍정하와 중국 사신의 일화를 역사 수업 형태로 발표, <과학탐구실험> 한옥의 각 구성 요소들에 현대의 내진 설계 원리가 적용된 사실을 조사해 발표, <사회문제탐구> ‘역사 왜곡과 역사 교육에 대한 고찰’을 주제로 발표, 일본의 수출 규제와 독도 영유권 주장 등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 설문조사
2학년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수학Ⅰ> 삼각함수로 수막새를 복원하는 방법 탐구, <수학Ⅱ> 구분구적법과 조선시대 토지제도에 대해 탐구, <한국지리> 우리나라의 국토 발전과 공업 성장의 역사, 장단점 발표, <윤리와 사상> 역사왜곡 현상을 원효의 원융회통 사상으로 성찰, <심화영어독해Ⅰ> <사피엔스>를 읽고 제국주의를 긍정하는 듯한 저자의 시각에 반박문 쓰기 활동 진행
선택 과목
▒ <한국지리> <세계지리> 사회 과목 중에 역사 다음으로 좋아했던 것이 지리였다. 지리적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 역사 공부에도 꼭 필요하기에 선택했던 과목이다.
▒ <세계사> 한국사를 알아갈수록 각 나라의 역사가 서로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고 느꼈다. 티베트학과 내륙아시아사를 전공한 교수진이 있는 고려대 사학과에 끌린 이유도 역사를 좀 더 폭넓게 배울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었다.
▒ <지구과학Ⅰ> 역사를 이해하는 데는 인간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한 관점이라고 생각했다. 유물의 연대를 측정하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접하는 등 흥미 있게 배웠던 과목이다.
▒ <세계문제와 미래사회> 3학년 2학기에 진행된 수업이었지만, 과목 취지에 맞게 제대로 운영됐다. 직각으로 되어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국경선에 흥미가 생겨 발표 주제로 잡으면서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며 원주민들의 문화, 언어, 종교 등에 대한 고려 없이 국경선을 제멋대로 그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현재 아프리카 대륙의 민족적 갈등도 그에 기인한 탓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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