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넘을 약학 원리 다시 보는 독서
취재 정나래 기자 lena@naeil.com
“약학대학에서는 질환과 약물의 작용 원리, 개발 방법론, 사용법을 배웁니다. 약물을 이해하려면 매우 다양한 분야의 총체적인 지식이 요구됩니다. 따라서 약학에서는 생물·물리·화학에 대한 지식을 기본적으로 키우고, 통계·경제·사회·법규를 비롯한 다양한 지식을 가르칩니다. 임상에 필요한 약물치료학과 약물 개발 기술도 다루고요. 특히 약물 개발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단백질, 줄기세포 치료제, 그리고 유전자 치료법과 같은 ‘바이오로직스’는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약물 개발도 활발하죠.”
_ 가천대 약학과 천광훈 교수(본지 1038호 전공 적합書에서 발췌)
ONE PICK! 전공 적합書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지은이 로얼드 호프만
옮긴이 이덕환
펴낸곳 까치
“서울대 권장 도서로 꾸준히 이름을 올린 책입니다. 다소 난도가 있어 고등학생들이 쉽게 읽기는 어렵고요. 하지만 약학과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꼭 읽어보길 권합니다. 특히, 1부의 ‘이성질 현상’ ‘똑같은 분자도 있을까’ ‘어둠 속에서의 악수’ ‘분자 모방’은 약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개념을 다루고 있습니다. 책을 읽어나가며 약학의 기초 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만큼 눈여겨보세요. 4부의 ‘탈리도마이드’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은 역시 약을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또 다른 하나, 바로 윤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사람을 고치는 약, 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지식과 윤리 어느 하나의 무게도 소홀히 하지 않는 책을 통해 진지하게 약학에 접근해보길 권합니다.”
_ 자문 교사단
ONE PICK! 책 속으로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 두 얼굴의 약 바로 알기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직전, 약사는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직업으로 꼽혔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백신과 치료제 개발, 보급 상황이 실시간 중계되고 있다. 신약 개발과 감염병 치료에서 ‘약사’의 역할도 새롭게 부상됐다. 약에 대한 ‘전문 연구자’로 재조명받은 셈이다. 이는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를 읽어봐야 할 이유와 맞닿아 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로얼드 호프만이 쓴 책이다. 약은 ‘화학’에 기초한다. 화학의 발전은 의약학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져 인류의 생명을 연장했다. 책에 언급된 다양한 사례의 상당수가 질병 혹은 약과 관련됐다. 읽으면서 약의 근원을 이루는 지식과 사고에 다가설 수 있다.
지은이는 화학은 무엇인지 그 정체를 분자에서 시작해 10부, 총 51개 챕터에 걸쳐 설명한다. 화학의 기본 개념을 실생활 속 예와 함께 알려준다. 특히 탈리도마이드 사태를 다루는 방식이 흥미롭다. 3부에서 분자 합성을 다룬 후 4부 ‘무엇이 잘못됐을까’에서 효과적인 수면제로 판매됐지만 신경염과 기형아 출산의 원인으로 지목된 탈리도마이드 사태의 경과를 화학자의 시각에서 재구성해 보여준 뒤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돌아본다. 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인 화학물(약)의 특성, 위험성을 알면서도 경제적 이득에 눈이 먼 기업과 이를 묵인한 정부, 보상 협의 과정, 법적 규제까지 따라가다 보면 지은이와 같이 과학의 쓰임, 과학자의 자세를 자문하게 된다.
약학을 비롯해 의학, 화학, 각종 공학 계열을 지망한다면 꼭 읽어볼 만하다. 다루는 개념은 쉽지 않지만, 대화체에다 ‘대립’ ‘대조’되는 화학의 성격을 반영한 서술이 긴박감을 줘 덜 어렵게 읽힌다. 옮긴이인 서강대 이덕환 명예교수의 ‘네이버TV 열린연단’의 강의·토론을 함께 보면 좋다. 보다 깊게 이해하고, 색다른 탐구 활동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무리한 경제성 추구와 인간의 어두운 측면인 탐욕이 화학적 재난의 주원인이었다. <중략> 더 엄격한 규제 때문에 새로운 의약품이 개발되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규제에 의해 탈리도마이드와 같은 재난이 미리 예방됨으로써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_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201~204쪽
선배의 독서와 진로
끊어 읽을 수 있는 과학도서, 친구들과 함께 보며 지식·생각 키웠어요
배현지
조선대 약학과 1학년
약학 전공을 결심한 계기는?
저는 원래 의학 계열 진학을 목표로 했어요. 막연히 꿈만 꾸다 고교 입학 후 <생명과학>을 깊게 공부하고, 동아리에서 실험을 비롯해 다양한 탐구 활동을 하다 보니 ‘유전’ 분야에 눈길이 가더군요. 유전자 가위, 유전병 등에 흥미를 느껴 조사했고, 의학이 발전된 지금도 원인 불명의 난치병과 유전 질환이 여럿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죠.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의학과 의공학 분야에 간절한 뜻을 품었어요. 한데 코로나19로 재수를 시작할 때 약학과가 학부에서 신입생을 선발한다는 얘기를 들었죠. 의사보다 대중적으로 사람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 연구를 해볼 수도 있다는 점에 끌려 진학했어요.
대입 준비 과정에서 독서 활동을 어떻게 했나요?
독서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어요. 전남대사대부고에선 1학년 때 각 과목 수행평가 중 하나가 과목 관련 책을 한 권씩 읽고 조사나 토론·발표였어요. 저는 주로 친구들과 모둠을 짜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책을 찾아 함께 읽었습니다. 같은 주제의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감상이 달라 재밌더라고요. 2, 3학년 땐 별도 과제가 없어도 비슷하게 책을 봤어요. 저는 생명과학 분야, 특히 의학 윤리와 관련된 책 위주로 읽었습니다. 전문 지식이 없어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다양한 의견이 나와서 친구들과 토론하기 좋았거든요. 특히 복제 인간에 대한 책은 충격적이었어요. 인권을 누릴 대상의 범위부터 장기 매매 시스템 활성화의 부작용까지 여러 생각을 하면서, 의약학 분야는 단순히 기술 발전을 넘어 최대한 많은 사람이 조건 없이 누릴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의약학을 어떻게 공부해나갈지 방향을 잡은 셈이에요. 후배들에게는 ‘끊어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독서 도중 다른 공부를 하다가 다시 보기가 수월하거든요. 원하는 부분만 찾아서 볼 수 있어 효율적이고요. 특히 과학 도서는 이런 책이 많으니 목차를 잘 보고 선택하세요.
선배의 강추 전공 적합書
<불량의학>
지은이 크리스토퍼 완제크
옮긴이 박은영
펴낸곳 열대림
고1 때 봤는데, 지금도 누가 책 추천을 부탁하면 일순위로 답할 정도로 인상 깊었어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잘못된 의학 상식을 바로잡는 책이에요. 감기 치료부터 백신 접종에 이르기까지 각종 대체의학과 언론에서 알려준 그릇된 의학 상식을 과학적 근거를 통해 비판하죠. 청소년들에게도 가까운 이야기가 많아요. 완전식품으로 알려진 우유에 대한 비판부터 백신에 대한 공포, 살찌는 체질의 실체도 파헤칩니다. 무엇보다 정말 쉽고 재밌게 쓰였어요. 의약학 계열을 목표로 한다면, 과학에 기초한 올바른 상식을 갖추는 게 중요합니다. 이 책으로 어렵지 않게 그 시작점에 서보길 권해요.
<크리스퍼 베이비>
지은이 전방욱
펴낸곳 이상북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읽어보려는 책입니다. 유전자 가위를 다룬 책 중 가장 좋은 입문서라고 여러 번 추천받았어요. 유전자 가위 기술은 유전자를 자르고 붙이는 유전자 조작에 사용됩니다. 의약학에서는 주로 유전 질환의 예방·치료에 쓰이지만, 수반되는 문제도 상당합니다. 특히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을 둘러싼 논쟁이 크죠. 책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사용해 세계 최초로 유전자가 편집된 아이를 탄생시킨 중국의 과학자 허 젠쿠이의 발표·토론 내용을 서두에 수록하고, 그에 따른 여러 문제를 지은이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정리했어요. 의약학 전문가들은 발전하는 과학 기술을 어떻게 써야 할지 다른 이들의 배 이상 고민해야 해요. 후배들이 이 책을 읽고 의약학 분야의 핫 이슈를 제대로 접하고,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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