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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수시 합격생 릴레이 인터뷰] 배현지 조선대 약학과

 유전자 핀셋으로 접한 의생명과학의 세계, 의대 넘어 보건 분야 진로 알려줬죠 

배현지 | 조선대 약학과 (전남대사범대학부설고) 

 

의학 계열은 오랜 꿈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수학을 좋아하고 잘했기에, 이왕이면 가장 높은 목표를 세우겠다는 포부에서 비롯됐다. 한데 고교 입학 후 막연했던 꿈이 조금씩 구체화됐다. 풀수록 흥미로웠던 생명과학 문제, 사람을 살리는 의공학 기술과 이면의 복잡한 윤리 논란, 고3 때 창궐한 코로나19와 그로 인해 겪어야 했던 낯선 상황들은 의료보건 분야 진로를 파고들게 했다. ‘의사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은 ‘사람들의 건강을 일선에서 지키는 의료보건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로 바뀌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대입 재도전을 결심했을 때 약학과 선발 소식을 들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료 혜택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눈길이 갔다. 조선대 약학과에 입학한 배현지씨의 이야기다. 그의 대입 도전기를 들어봤다.  

 

취재 정나래 기자 lena@naeil.com

사진 이의종

 

 


 

테셀레이션·지오지브라… 손끝으로 배운 수학 

 

현지씨는 어린 시절, 수학 체험전과 수학 축전을 즐겨 찾았다. 문제 풀이가 아닌 다양한 체험과 놀이로 만난 수학이 재밌었다. 성장하면서 그 재밌었던 놀이가 수학 원리나 법칙에 기반한다는 사실은 과목에 대한 흥미로 이어졌다. 같은 모양의 조각을 맞춰나가며 그림을 완성하는 테셀레이션은 놀이로 접했지만, 포장지 무늬와 욕실 바닥, 보도블록에서도 발견했다. 중학교 때 도형의 성질을 배우면서 그 원리를 깨우쳤다.

 

이렇듯 일상생활 곳곳에 숨어 있는 수학의 쓰임은 공부를 이어나가는 동력이 됐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수학을 파고들었고, 더 잘 이해하고 싶어 다양한 유형·난도의 문제를 풀거나 같은 문제도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다 보니 높은 성적을 거뒀다. 우수한 성적을 받고 느낀 성취감과 주변의 칭찬은 다시 수학에 몰입하게 했다. 

 

고교 입학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수업은 물론 여름방학 때 수학 체험 센터의 수학 탐구 교실에 참여해 일상 속 수학 원리를 탐구했다. 고1 2학기 <수학> 시간엔 ‘나도 출제자’ 프로젝트의 편집자로도 나섰다. 각 모둠에서 제출한 문제를 모아 편집하면서, 일일이 그래프를 그리는 게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중학교 때 접한 ‘지오지브라’가 떠올랐다. 

 

“점과 점을 이어 직선이나 곡선을 그리고, 이를 활용해 함수 또는 도형까지 만들어볼 수 있는 수학 소프트웨어라 그래프 문제를 낼 때 써봤어요. 시간 단축은 물론, 해당 개념을 활용한 그래프의 특징이나 유의점을 직관적으로 알게 됐어요. 수학은 머리가 아닌 손으로 직접 만져보면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고요.”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싶어 2학년 때 광주시교육청 수학 축전에 참여, 체험 부스를 만들었다. 무게중심을 주제로 오뚝이, 시소 등 소재를 찾아 시연하고, 관람객이 팽이를 만들어보게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태풍으로 행사 일정이 중간고사 3일 전으로 연기됐어요. 부담을 느낀 팀원 일부가 빠져나갔죠. 행사 당일엔 체험자가 많아 재료가 떨어지기도 했고요. 남은 친구들을 독려하고, 소진된 재료 대신 과자 상자를 이용해 체험 기회를 주며 위기를 극복했어요. 무게중심을 넘어 질량중심 등 심화된 내용을 공부하고 실생활에 적용하면서 사람들과 수학의 실용성과 재미를 공유할 수 있어 보람됐어요. 유연한 사고의 중요성도 깨우쳤고요.” 

 

 

<생명과학> 파고들게 한 유전자 가위  

 

수학에 깊이를 더해가며 새로운 분야에 흥미를 느꼈다. ‘유전자’였다. 문제를 풀며 퍼즐 같다고 생각하던 차 과학 잡지에서 ‘인간배아 유전자 교정 진실 공방’ 기사를 봤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심장병을 예방·치료한다는 내용이었다. 

 

“비후성 심장근육병증은 좌심실 벽이 두꺼워져 호흡 곤란이나 가슴 통증을 유발하는 질병입니다. 유전병으로 ‘MYBPC3’의 변이, 즉 돌연변이 유전자로 인해 발병해요. 이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정상 유전자로 교정했다는 내용이었어요. 관심이 생겨 유전병과 유전자 가위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찾아봤어요. 생각보다 유전자 병의 종류가 많고 증세도 다양해서 두렵더라고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데도 여전히 치료가 어려운 질병, 끊임없이 발견되는 새로운 질병의 원인을 찾고 예방이나 치료로 이어가려면 노력이 더 필요한데, 그런 일을 누가 하나 궁금했어요.”

 

생물학탐구 동아리에서 유전자 재조합 기술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에 대해 더 파고들었다. 유전자 가위의 원리로 DNA보다 더 작은 단위인 염기를 조정할 수 있는 유전자 핀셋 개발 소식을 접하면서, 기술 발전의 이면에도 눈길이 갔다. 특히 난자로만 번식하는 처녀 생식을 알게 된 후 생명윤리를 깊이 고민하게 됐다. 

 

“생명체로 인정받는 시기는 수정-착상-출산 등의 단계 중 언제인지, 유전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가 우수 유전자만을 선별하는 유전자 쇼핑의 도구로 전락하지는 않을지, 동물 실험을 계속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어요. 혼자 답을 내리기 어려워 동아리 부원들과 영화 <가타카>를 함께 보고, 관련 도서도 나눠 읽으며 여러 의견을 공유했어요.” 

 

 

수시 재도전이 약대 지원 기회로  

 

수학과 생명과학에 대한 흥미는 공부 습관을 바꿨다. 학생들의 다양한 과목 선택을 열어둔 전남대사대부고의 교육과정 덕분에 수학·과학 과목을 마음껏 선택했고, 그 결과 <수학Ⅰ·Ⅱ> <심화수학> <확률과 통계> <기하> <미적분> 등에서 배운 개념을 다른 과목 풀이에 적용해보거나 원리를 증명하는 데 활용했다.

 

“유전자 핀셋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는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융합할 수 있는 시각과 지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어요. 생명과학 원리에 바탕을 둔 새로운 의학 기술이 대중화되려면 수술이나 약 혹은 의료 기기 등으로 구현돼야 하는데 이는 물리학 화학 수학 등 인접 학문을 활용해야 해서 저도 서로 다른 과목을 연결지으려 애썼어요. 교과 개념을 심화하면서 관심 분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죠. 여러 과목 수업과 동아리 등 창체 활동을 엮을 수 있어 탐구 활동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고요.”

 

진로를 보는 시야도 넓어졌다. <생명과학Ⅰ·Ⅱ> <화학Ⅰ·Ⅱ>를 배우며 유전자는 물론 치료제, 수술 로봇 등 AI·빅데이터와 결합한 의료 과학 기술, 탄소 나노 튜브와 같은 신소재까지 관심이 생겨 탐구했다. 동시에 임상의가 아닌 연구의부터,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의공학과, 신약이나 의료 기기 소재 개발로 나아갈 수 있는 생명공학과나 화학공학과에도 눈길이 갔다.

 

하지만 고3 때 암초를 만났다. 코로나19로 인한 등교 지연 끝에 온라인 수업이 재개됐지만, 교사·친구들과의 질의응답이나 토론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던 현지씨는 집중하기 어려웠다. 결국 목표했던 대학의 수시에서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곧바로 재도전을 결심했다. 홀로 수능 준비를 하던 때 약학과의 학부 신입생 선발을 알게 됐다. 

 

“제가 꿈꾸던 의료보건 분야에서 또 다른 선택지가 생긴 셈이라 눈여겨보게 됐죠. 약대는 의대처럼 의료보건 분야에서 전문직으로 일할 수 있으면서, 의사보다 환자들과 손쉽게 만날 수 있고 약사부터 연구직까지 졸업 후 진로 선택의 폭이 넓다는 점이 끌렸어요.” 

 

특히 조선대 약학과는 현지씨에게 일반 종합 전형 외에 지역 인재 전형으로 지원 기회가 한 번 더 있다는 점, 최저 기준이 3개 영역 합 6 이내(2023학년 수시에서는 7 이내로 완화)라는 점, 장학금 제도와 졸업생 네트워크가 잘 갖춰져 있다는 평이 매력적이었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현지씨에게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좀 더 자신에게 노력할 기회를 주면 좋겠어요. 중간·기말고사 성적이 한 번 잘 안 나오면 정시에 올인하겠다는 친구들이 많아요. 실수 한 번의 대가는 수능이 더 크다는 점을 외면하는 것 같아요. 학교 시험 한 번으로 대학이 바뀌진 않아요. 일부 대학에선 N수생은 3학년 2학기 성적까지도 보고요.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기회가 있을 거예요.”

 


 

 나를 보여준 교과 세특 & 선택 과목 

 

 


 

 학생부 

 

 1학년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수학> ‘5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은 없다’를 보고 3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증명하거나 조립제법에서 나누는 식이 2차식인 경우도 찾아 푸는 등 스스로 심화함, <통합사회> 다양한 인문·사회적 현상에 관심이 많고 통계 자료를 통해 지역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함 

 

 2학년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수학Ⅱ> <심화수학> 내용과 연계해 함수의 증감과 오목 볼록에서 적용되는 구간의 차이에 대해 질문하는 등 교과 간 통합 학습을 함, 미분이 필요한 이유와 실례를 들어 친구들에게 학습 이유를 설명함, <심화수학Ⅰ> <수학Ⅱ>를 바탕으로 미분법, 급수, 삼각함수의 심화 내용을 추가 학습, 사다리꼴 모양의 케이크 넓이를 구하는 문제를 디자인해 삼각함수와 미분을 통해 해결함, <생명과학Ⅰ> 유전 학습 중 헌팅턴 무도병에 대해 조사 발표, 다큐 <닥터 로봇>을 보고 마이크로 로봇, 나노 로봇을 통한 진단·치료 등 의공학 기술에 관심을 가짐  

 

 3학년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화학Ⅱ> 화학 이론을 주변에 적용해보려고 함, 염의 가수분해 및 완충 용액 학습 후 약물을 만들 때 완충 용액을 사용하는 까닭을 조사·추가 의문점을 질문함, <재밌어서 밤새 읽는 화학 이야기>를 읽고 분자 간 상호 작용을 재정리하는 등 지식을 구조화함, <생명과학Ⅱ> <크리스퍼 베이비>를 읽고 유전자 가위의 활용 방안으로 비암호화 DNA 기능 연구의 필요성 피력

 

 

 선택 과목 

 

▒ <생명과학Ⅰ> <생명과학Ⅱ> 의대 진학을 위해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통합과학>을 들으며 유전 분야가 특히 흥미롭고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유전자 가위를 통해 다양한 유전병과 이를 진단·치료할 수 있는 이론·기술을 알게 되고, 이를 둘러싼 윤리적 논쟁까지 고민하면서 진로도 넓어졌다. 

 

▒ <화학Ⅰ> <화학Ⅱ> 의학과 관련된 심화 과목이라 반드시 들어야 할 것 같아 선택했다. 일상 속 다양한 현상이 화학 원리에 기반하고 있으며, 사람을 살리는 치료제에도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어 실험을 비롯해 다양한 탐구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특히 다큐나 도서를 통해 교과서보다 쉽게 이해하고, 다양한 궁금증을 깊이 해결해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 <영어Ⅱ> <중국어Ⅰ·Ⅱ> 외국어로 관심 분야에 접근하면서 두 분야의 지식을 함께 얻을 수 있어 좋았다. 영어로 유전자 특허 문제를 탐구했는데, 우리말로 검색했을 때보다 정보의 양과 질이 뛰어났다. 중국 병원의 분급 체계 등 국가별로 다양한 의료 체계도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