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 수시 합격생 릴레이 인터뷰] 서울대 인문 계열 정진경

국민과 함께하는 정치를  인문학에서 찾으려 해요

정진경 | 서울대 인문 계열, 제주 삼성여고


질문이 많은 학생이었다. “정진경, 질문 좀 그만해”라는 말까지 들어봤을 정도지만 진경씨가 참 열심히 산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했다. 고등학교 생활 내내 야무지게 열심히 살아왔음은 학생부의 모든 기록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런데 정작 진경씨는 정치외교학 하나에 집중해 열심히 달리다 뒤늦게 다른 방향을 발견했다. 자신이 찾고자 하는 바는 인문학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고 3 여름방학 때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깨달은 것이다. 


취재 손희승 리포터 sonti1970@naeil.com 
사진 이의종

 


교내 청원 제도·팟캐스트로 체감한 생활 정치  


진경씨는 고등학교 때 가장 인상 깊었던 활동으로 팟캐스트와 청와대의 청원 제도를 학교에 도입한 것, 두 가지를 꼽았다. 학교 리로스쿨 사이트를 통해 60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안건은 대의원 회의에 자동 상정되도록 교내 청원 제도를 만든 것이다. 이를 위해 학생들에게 설문지를 돌리고 설문 결과를 통계적으로 분석했으며, 민주주의의 성격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했다.  팟캐스트는 교내 정치외교 동아리에서 한 활동이었다. 당시 한창이던 일본 불매 운동과 관련해 합법적인 행위와 불법적인 행위, 불매 운동의 의의 등을 방송으로 내보냈더니 학생들이 댓글로 적극 의견을 냈고 활발한 토론의 장이 열렸다. 진경씨는 지식은 관심의 출발이 되고 관심은 의견을 나누는 기반이 됨을 깨달았다. 


진경씨의 활동은 반드시 결과물이 따라온다는 특징이 있다. 학교 청원 제도 덕분에 도서관 대출 기간을 7일에서 14일로 연장해달라는 건의가 받아들어졌고 연체율이 낮아졌다. 팟캐스트 방송은 정치가 생활 속으로 들어오는 통로가 됐으며 진경씨는 초등학생용 역사와 정치를 위한 교육 지침서를 제작해 교내 교육 봉사 동아리와 공유했다. 이렇듯 진경씨의 학생부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정치외교학과 관련된 활동으로 일관됐다. 그런데 왜 인문 계열로 지원했을까?    


“서울대 지역 균형 전형 면접에서 아니나 다를까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이 집중적으로 나왔어요. 정치외교학에 뜻이 있었는데 왜 인문 계열로 지원했느냐는 거죠. 정치인은 해결책을 찾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국민과 함께하는 정치를 하고 싶어요. 정치인은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시스템이 구축된 해결 방안을 내놓을 수 있거든요. 인문 계열로 입학하면 좀 더 신중하고 넓게 선택해서 사람에 대한 공부를 깊이 있게 할 수 있겠더라고요. 제가 추구하는 정치학은 철학적인 바탕과 연구를 필요로 하거든요. 수강 신청을 해보니 하고 싶었던 공부 다 인문 계열에 있어서 역시 잘 선택했구나 싶었죠. 하하.”


정치인은 쉼 없이 닦고 행실을 바르게 하는 수신(修身)이 필수이며, 이를 위해 철학적, 인문학적 바탕을 쌓아야 한다. 진경씨는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으려면 사람과 문화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깨달은 것이다.  

 


1, 2학년 때 자기소개서를 미리 써봤다면 

방향 설정이 좀 더 수월했을 거라는 아쉬움


정작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난관에 부딪혔다. 빨리 시작했지만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1, 2학년 때 자기소개서를 대강이라도 써보라는 선배들의 조언이 무슨 뜻이었는지 그제야 알겠더라고요. 정치외교학과라는 전공과 관련된 공부와 활동만 생각하고, 제 인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큰 목표에 대해 미리 생각하지 못했던 거죠.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정리하다 보니 일관된 맥락은 ‘사람과 함께, 사람을 위하는’임을 깨달았어요. 인문학을 국어나 사회 교과와 관련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인문학이었더라고요.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이를 깨달았으니 1, 2학년 때 미리 써볼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죠.”


정치외교학에 관련한 관심은 교과 공부에서 더 짙은 색깔을 드러냈다. 연합형 공동 교육과정으로 들은 <국제정치>에서 일본 불매 운동은 강제 노역자 판결과 관계 있음을 알고 수출 규제와 무역 전쟁을 국제관계 안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통합사회>에서는 인권 보장을 위한 헌법의 역할과 동아시아의 역사 분쟁과 해결 방안에 대해 정리했다. <영어Ⅱ>에서는 대통령 중임제와 연임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고등학교 때 진경씨는 그 누구의 눈으로 보아도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할 학생이었다.



환경 문제에 관심 많은 제주 소녀


진경씨는 정치 문제 중에서도 환경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다. <영어Ⅰ>에서 독일의 빗물세 정책 등 우리나라에서도 실시했으면 하는 세계 여러 나라의 환경 정책에 대해 발표했다. <생활과 과학>에서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슈퍼박테리아를 식수로 섭취하면 인간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조사했다. 봉사 활동으로 해안가에 쌓이는 해양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면서 선진국이 주도해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주도에 해양 쓰레기가 많아 불편했어요. 저는 제주도를 매우 사랑하고 제주도 사람이라는 사실에 정말 자부심이 크거든요.” 제주도의 역사와 상처에 대한 탐구 활동도 활발했다. 1학년 때 읽은 <청소년, 4·3 평화의 길을 가다>로 인해 제주 4·3 사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3학년 때 <사회문제탐구> 과목에서 좀 더 깊이 탐구했다. 지역 언론이 노력해서 4·3 사태에 관한 오해를 바로잡았다는 자료를 보고 도의원에게 면담을 요청, 언론이 아니라 도민들이 자발적으로 노력한 결과였다는 답변을 들었다. 


“지역색이 강한 이슈를 자주 다뤘어요. 제주도를 향한 애정이 크기도 하지만, 내 주변의 일부터 해결하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진 것 같아요. 늘 친구들과 함께하다 보니 더 그런 방향으로 향한 것 같기도 해요. 저는 빈틈이 많은 사람이지만 믿음직한 친구들이 주위에 많아 늘 든든했어요. 친구들과 함께해서 더 즐거운 고등학교 생활이었어요.” 

 


혼자 하는 독서에 깊이를 더해 코로나19 극복  


지난해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코로나19 고3’이라고 불렸다. 2020년 3월 생각지 못하게 등교가 기약 없이 연기되고 온라인 수업도 허둥지둥 시작됐다. 다행히 제주도는 코로나19의 영향을 그나마 덜 받은 지역 중 하나였다. 3, 4월은 학교를 못 갔지만 등교가 재개되고 난 후 수능 볼 때까지 진경씨는 매일 등교했다. 물론 사람이 모이는 활동에는 제약이 많았지만 말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캠페인 활동도 못하고 동아리도 모이기 힘들었어요. 이럴 때일수록 코로나19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생각해봤죠. 생에 몇 번 없을 큰 사건이잖아요.”


위기는 기회였다. 진경씨는 코로나19를 교과목으로 가지고 들어오면서 독서로 깊이를 더했다. 유발 하라리가 코로나19로 인한 ‘전체주의적 감시’를 지적하자 권력자가 텔레스크린을 통해 사생활을 감시한 <1984>와 연결해 <고전읽기>에서 책을 읽고 소감을 남겼다. <보건> 수업에서 감염병이 역사를 바꾼 사례를 책에서 찾아 읽으며 코로나19가 흑사병과 천연두처럼 사회에 미칠 영향을 탐구한 결과, 재택근무와 온라인 쇼핑이 활발해지니 국가는 IT 인프라에 더 많이 투자할 것이며 정치는 민심을 안정시키고 감염률을 낮추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함을 찾아냈다. 


2학년 때 시작해 3학년까지 이어진 팟캐스트 방송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계속할 수 있었던, 아니 더 활발하게 할 수 있었던 활동이었다. 진경씨는 아나운서를 맡아 학교 친구들의 댓글에 실시간으로 답변하며 온라인으로 교류했다.  


진경씨는 노력은 배신하지 않음을 믿는다고 했다. 의문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친구들과 함께 답을 구하고,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가는 진경씨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을 하든 환영받을 사람임이 분명하다.  

 


나를 보여준 학생부 & 선택 과목

 


 학생부 

 

 1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정치 외교 동아리인 미네르바에서 제주 법정사 항일 운동을 전국민에게 알리는 프로젝트를 기획함. 축제에서 항일 운동의 전개 과정을 설명하는 큐레이터로 활동함.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국어>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되 복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진정한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힘. <통합과학> 제주 한림 지역의 지하수 오염에 대해 조사함. 

 


 2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정치외교 동아리에서 제주 학생 인권 조례와 관광과 환경 관련 조례를 제정함. 정치와 법 외교에 관한 팟캐스트인 ‘박학다식’에서 아나운서로서 지역의 시사 이슈를 다룸. 모의유엔에서 WHO 수석 의장을 맡음.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수학Ⅱ> ‘왜 문명마다 숫자 4부터 표기 방법이 다를까?’라는 의문을 갖고 수학이 인간의 역사와 함께 발전하면서 의사소통을 통해 의미를 발견했음을 발표함. <영어Ⅱ> ‘대통령 중임제와 연임제’의 용어를 정의하고 정부 형태 개편에 대해 영어 토론을 진행함. 

 


 3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신문 칼럼 쓰기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계층 간 대처가 달라 양극화가 심해지고 신다위니즘이 발생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 온라인 수업으로 인한 성취도 양극화에 대한 보고서를 씀. 해안 쓰레기를 처리하는 봉사 활동을 하며 미국의 법규를 인용, 각 기관마다 다른 대책을 내놓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함.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언어와 매체> 언어가 사고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토론하며 지역과 이주민에 대한 혐오 발언을 막기 위해 교육과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함. <영어독해와 작문> 개인주의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게 할 수도, 정치적 무관심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며 개인주의와 사회의식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희망함.  

 

 선택 과목 


▒ <국제정치> 연합형 공동 교육과정으로 2학년 여름방학에 매일 3시간씩 수업했다. 일본 수출 규제에 관해 모의유엔처럼 모든 학생들이 각 국가의 대표가 되어 각자의 입장에서 성명서를 내는 활동을 했다.


▒ <고전읽기>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읽은 작품을 읽는 수업으로 <사미인곡> <누항사> 등 고전시가와 톨스토이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선정해 읽었다. 유발 하라리가 코로나19에 대해 ‘전체주의적 감시’라고 말한 것을 <목민심서>와 <1984>에 나온 내용과 연관 지어봤다.


▒ <고전과 윤리> <생활과 윤리>에 이어지는 과목으로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으며 정직이 최고의 가치임을 깊이 깨닫고 자기소개서에 인용했다. 인간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깊이 있는 과목이다. 


▒ <사회문제탐구> <사회·문화>와 결을 같이하는 과목으로 탐구 활동을 깊이 할 수 있었다. 제주 4·3 사건 관련 법의 제정 과정에서 언론이 미친 영향을 연구 보고서로 써서 학생부에 기록했다. 


▒ <세계사> 역사 과목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매우 즐거운 과목이었다. 암기 과목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발표 수업을 많이 할 수 있다.


▒ <생활과 과학> 실생활에서 필요한 과학에 관한 과목이다. 환경과 병에 관심이 많아 항생제가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정치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