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소통하는 인공지능 개발하고 싶어요”
권수현 |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울산 현대청운고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어 국어국문학과 진학을 목표로 삼았지만, 의외로 자연 계열을 고집했다. 수학과 컴퓨터에 대한 재능과 흥미가 남달라서였다. 2학년 담임 선생님의 설득(?) 끝에 인문 계열 수업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고3 1학기를 마칠 무렵엔 진로 희망이 ‘인공지능 개발’ 분야로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국어국문학 전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한국어 정보의 전산 처리’ 분야여서 더욱 가슴 뛰었다. 권수현씨는 ‘융합형 인재’의 전형을 보여주며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일반 전형으로 입학했다. 국어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탁월한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국어 의사소통이 가능한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꿈꾸는 수현씨를 만났다.
취재 홍정아 리포터 jahong@naeil.com
사진 이의종
학교 계단의 명언 분석하며 문법의 즐거움 깨달아
울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수현씨는 자유학년제를 보낸 중1 때 국어국문학도의 꿈을 키웠다. 다양한 영상을 만들고 글쓰기 기회를 자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본인의 재능을 발견했다고. 문학에 대한 막연한 애정이 국어학에 대한 열정으로 발전한 건 고등학교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접한 ‘문법’의 역할이 컸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국어 음운 현상이나 문장의 짜임 같은 개념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러다 학교 계단에 씌어 있는 명언을 분석하며 문법 개념을 익히는 즐거움까지 알게 됐죠. ‘타인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기를 아는 사람은 현명하다’와 같은 여러 단문을 단어의 짜임과 문장 성분 위주로 탐구하면서 나만의 문법 노트를 만들었어요.”
문법 노트를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문장에 등장한 ‘사람’의 짜임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수업 교재와 국립국어원의 자료를 찾으며 탐구를 이어나갔다. “결국 ‘살-’과 중세 국어의 명사 파생 접미사가 결합해 지금의 ‘사람’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어요. 그동안 단일어라 생각했던 어휘도 중세 국어의 다양한 접사를 고려하면 그 어원은 파생어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죠.”
‘노란색과 동백꽃’ 등 색깔의 관점에서 문학 작품 해석하고 감상한 경험
국어 공부에 대한 사랑은 학교생활 전반에 깊이 파고들었다. 교내 독후감 대회와 백일장에 빠짐없이 참여해 좋은 성과를 얻었고, 본인의 경험을 살려 후배들에게 국어 학습법을 가르쳐주는 ‘국어 상호 과외 봉사’도 했다.
“혹여 잘못된 정보를 알려줄까 봐 걱정돼 더 책임감을 갖고 철저히 공부했던 것 같아요. 정극인의 <상춘곡>을 수업하면서 후배들이 ‘지다’와 ‘디다’, ‘좋다’와 ‘다’ 등의 어휘를 헷갈려 하는 것을 보고 비슷한 어휘들을 표로 정리해 나눠준 기억이 납니다. 쉬는 시간에 문법 질문을 하러 후배들이 찾아올 땐 무척 기뻤어요.” 수현씨는 가장 인상 깊은 교내 활동으로 문학 작품에서 색깔이 갖는 상징성에 대해 탐구한 활동을 꼽았다. <문학개론> 시간에 ‘색깔로 세상을 보다’라는 주제로, 작품을 색깔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작가의 의도를 추론한 탐구였다.
“작가 김유정의 <동백꽃>에서 ‘주인공과 점순이는 왜 하필 동백꽃 속으로 쓰러졌을까?’라는 의문을 노란색과 연결 지어 설명할 수 있었어요. 노란색이 ‘아이’를 나타내고 생강나무꽃의 꽃말이 ‘수줍음’이라는 점에서 어린 남녀의 순박한 사랑을 생강나무꽃의 방언인 ‘동백꽃’으로 표현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색깔의 관점에서 작품을 해석하면서 하나의 작품을 색다르게 바라보는 법을 배울 수 있었어요.”
<경제수학> <심화수학> 수강하며 자연 계열 성향 발휘
국어국문학과 진학이 목표였지만, 수현씨는 의외로 1학년을 마칠 무렵까지 자연 계열 과목을 이수할 작정이었다.
“상대적으로 사회보다는 과학을 훨씬 좋아하는 편이고, 어릴 때부터 수학이랑 컴퓨터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고2 담임이셨던 정현호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국어국문학과는 인문대학’이라는 말씀에 설득당하고(?) 말았죠. 2학년 진학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 인문 계열로 전향했어요. 당시엔 어렵고 힘든 결정이었지만, 덕분에 진학 준비를 잘해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께 감사드려요.”
진로는 명확했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학업 슬럼프를 피할 길은 없었다. 같은 학년에 인문 계열 학생이 30여 명이 되지 않아 등급 확보의 스트레스도 컸다.
“전국 단위 자사고라는 학교 특성을 감안해야겠지만, 원점수 90점이 넘어도 사회 과목 내신이 3, 4등급이니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등급이나 점수에 연연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과목을 재미있게 듣자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어요. 수학 시간에 문학을 접목해보기로 하고, 점근선에 닿지 않는 지수 함수의 성질에 착안해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지수 함수의 서러움>이라는 시를 써 발표했어요. 친구들의 박수까지 받으니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요.”
웹 언어로 제작한 ‘미궁 게임 프로젝트’ 계기로 희망 진로 바뀌어
후배들의 국어 공부를 도우면서 늘 떠나지 않는 고민은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국어를 공부할 수 있을까’였다. 긴 고민 끝에 게임 속에 국어를 담으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얻었다. 3학년 1학기에 친구들과 야심차게 진행한 프로젝트가 바로 ‘ICU’라는 미궁 게임 프로젝트다. ICU는 ‘I am Chung Un’ ‘Intensive Care Unit’ ‘I C(see) U(you)’의 세 가지 의미로 게임 스토리에 이 요소들을 모두 담았다고.
“게임 플레이어가 직접 국어 문법 문제를 풀어 학교를 탈출하는 게임이에요. CSS, HTML 등의 웹 언어로 미궁 게임 페이지를 설계했는데, 저는 주로 스토리 연출과 문제 만들기를 담당했죠. 친구들의 게임 페이지 설계를 보면서 그때 어깨 너머로 많이 배웠어요.”
국어 문법의 개념 바로잡기를 목표로 게임 문제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음운 변동에서 쌍받침의 교체를 탈락으로 착각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하의덕 작가의 <땅끝>에 나타난 음운 개수의 변화를 묻는 문제를 개발해 친구들이 쉽게 개념을 익힐 수 있게 했다. 게임 페이지 제작을 마친 뒤에는 이 내용으로 교내 축제에서 연극 발표를 하며 학생들과 함께 문제를 풀었다.
“내가 만든 게임으로 친구들이 국어 문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뿌듯했어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뉴미디어를 활용하면 학생들이 국어를 즐기면서 학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죠.”
이후 수현씨의 진로에 큰 변화가 생겼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해 드라마 작가가 돼야겠다는 꿈이 ‘컴퓨터 정보 처리 기기 안에서의 우리말’에 대한 관심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파워포인트로 게임을 만들며 즐거웠던 경험이 떠오르면서 기술적인 부분을 더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이 피어났다.
한국어 기능 탑재한 인공지능 기술 분야 참여하고파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수현씨는 중앙도서관과 학과 사무실을 오가며 대학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대학에 들어와 제 관심 분야가 더 넓어진 것 같아요. 최근 끌리는 분야는 인공지능인데, 저희 학과 전공 과목 중에 <한국어 정보의 전산 처리>가 있거든요. 제목에 끌려 어떤 과목인지 알아보니까 컴퓨터가 한국어를 어떻게 인식하고 정보를 처리하는지를 다루는 학문이더라고요. 평소 컴퓨터에 대한 관심과 한국어, 그리고 인공지능의 조합이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져요. 특히 음성 언어 인식 분야를 공부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컴퓨팅 기초: 처음 만나는 컴퓨팅>이라는 과목에서 배우는 코딩의 매력에도 푹 빠져 지냈다. 컴퓨터공학 강의뿐만 아니라 이후 언어학 관련 강의도 복수 전공 등의 방법으로 꼭 수강할 계획이라고.
“<언어와 컴퓨터>처럼 저희 학과에는 제 관심 분야와 연결된 강의가 많아 너무 좋아요. 아무래도 기본적인 언어의 특성을 잘 알아야 인공지능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을 테니까요. 먼 훗날, 한국어로 인공지능과 자연스럽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나를 보여준 학생부 & 자기소개서
학생부
1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영자신문 동아리에서 Climbing Book 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담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참여했는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자세히 서술함.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문학개론> ‘색깔로 세상을 보다’라는 주제로 일곱 가지 색깔이라는 테마를 정하고 관련 작품들을 조사해 발표. 문학과 인문학 전반에 관심이 매우 높음. 세계를 관찰해 이를 창작으로 연계시키는 창의적 스토리텔링에 재능이 있음.
2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창작한 <바람개비> <새벽> 등의 시와 소설들을 모으고 표지도 직접 디자인해 모둠원과 함께 <붉은색과 푸른색>이라는 제목의 책을 만듦. 제본한 책을 급우들에게 공유하고 시를 해설해주는 등 시와 소설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보임.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언어와 매체> 한글 맞춤법 제29항에서 받침이 ‘ㄷ’인 이유에 대해 어원에 ‘ㄹ’이 존재했음을 밝히기 위함이라고 설명하는 등 탁월한 언어적 능력이 돋보임. <수학Ⅰ> 컴퓨터 한글 자판의 자음 배열이 자음들이 쓰이는 확률과 관련돼 있을 거라 가정하고 애국가를 표본으로 선정해 자음별로 애국가에 쓰인 빈도를 계산함.
3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동아리 ‘홍익인간’을 결성하고 국문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고안해, 문학 작품을 ‘키링’이라는 아이템에 녹여내자고 제안함. 다양한 시각적 심상의 시어들을 바탕으로 부원들과 함께 감각적으로 디자인을 고안함.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세계지리> ‘Cli-fi:기후 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를 소개하고, 지리학과 문학, 공학, 영화 등 학문의 융합을 꾀한 내용을 발표해 주목받음. <심화수학Ⅱ> 수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많아 수업 집중도가 높고 수학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사고하고 도전하는 능력이 탁월함.
선택과목
▒ <경제수학> <미적분> <심화수학Ⅰ> <심화수학Ⅱ>
인문 계열이었지만 수학을 무척 좋아했고, 또 잘했다. 문제 풀이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는 수학이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해 2학년 2학기에 <경제수학>을 선택했다. 또 어려운 문제를 고민하고 풀어내는 과정이 재미있고 심화 학습을 해보고 싶어 3학년 1학기에 <미적분>, 2학기에 <심화수학Ⅰ>과 <심화수학Ⅱ>를 선택했다.
▒ <문학개론> <문학과 매체>
문학 전반에 관심이 많았기에 조금 더 깊이 있게 배우고 싶었다. 무학년 심화 과목인 <문학개론>과 <문학과 매체>를 통해 작품을 배우는 것에서 나아가, 직접 문학을 연구하고 탐구해보고자 했다.
▒ <논리학>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논리인데, 체계적으로 그 방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3학년 2학기에 <논리학>을 수강하게 됐다. 특히 면접 대비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 <한문Ⅰ> <한문Ⅱ>
고전 문학을 읽기 위해선 어느 정도 한자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고등학교에 오기 전까지는 한자를 배운 적이 없어서 어려움이 많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2학년 때 <한문Ⅰ>을 수강했고, 배우는 과정에서 한시나 문장을 읽는 것에 흥미를 느껴 3학년 때도 <한문Ⅱ>를 이수했다.
▒ <한국지리> <세계지리>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공간적 배경이어서, 지리를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지리적 특성은 말의 분포나 특성과도 관련이 있어서 지리는 국어, 언어와 분리해 볼 수 없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2학년 때 <한국지리>, 3학년 때 <세계지리>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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