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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수시 합격생 인터뷰] 서울대 인류학과 신승주

“인간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따뜻한 학문, 인류학자들의 기록은 기사와 닮았어요”

신승주 | 서울대 인류학과, 경남 남해해성고

중학생 때부터 기자를 꿈꿔왔다. 사회 문제를 최전선에서 접하며 이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싶었기 때문. 인류학이라는 학문을 만나게 된 것은 2학년 때 선택 이수한 <사회탐구방법>을 통해서다. 수행평가를 위해 ‘제목에 끌려’ 읽은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가 알고 보니 인류학 입문서였다고. 좋아하고 관심 있어하는 영역의 집합체가 인류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학문과는 달리 인간의 삶 전체를 관통하려는 인류학의 접근법이 따뜻하게 느껴졌고, 현지 조사에 바탕을 둔 인류학자들의 기록 과정은 기사의 그것과도 닮아 있었다. 신승주씨가 미디어학도, 사회학도 아닌 서울대 인류학과를 택한 이유다. 


취재 정애선 기자 asjung@naeil.com  

사진 이의종



<사회문제탐구> <생명과학> <영어권문화>로 연결된 키워드, 혐오 


사회 참여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승주씨가 교과 공부에서 줄곧 고민해왔던 키워드 중 하나는 ‘혐오’였다. 1학년 학교 지정 과목으로 개설된 <사회문제탐구> 수업에서 저출생 문제 신문 스크랩을 진행하며 이면의 원인에 성별 간 적대적 감정이 확산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성별 혐오 보도의 프레임을 분석해보니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불러오더라고. 


“예멘 난민 문제나 퀴어 축제 관련 보도와 반응을 지켜보면서 소수자에게 드러내는 혐오 표현이 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혐오 감정의 본질을 이해하고 싶어 <혐오사회> <혐오와 수치심> <그건 혐오예요> 등의 책을 읽었는데, ‘내집단 의식의 과잉’이 외부자를 배척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차이를 인정하며 테두리를 지우라고 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한국 다문화주의의 단면과 오리엔탈리즘, 인종주의의 폭력성을 실감할 수 있었어요.” 


승주씨는 2015 개정 교육과정 첫 세대다. 1학년 때 <통합과학>을 배우며 진화론에 흥미가 생겨 선택한 <생명과학Ⅰ>과 <영어권문화> 등의 수업은 인종 문제에 대한 고민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생명과학 선생님께 인종 개념의 허구성에 대해 계속 질문했어요. <영어권문화> 수업에서 영어권 국가 중 한 곳을 선택해 역사나 문화 등 전반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발표했죠. 이는 3학년 <심화영어> 수업에서 미국 인종차별의 역사와 흑인에 대한 과도한 공권력에 항의하는 ‘BLM(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졌고요. 인류학이 사회과학, 인문학, 자연과학적 특성을 모두 갖고 있는 만큼, 과목의 경계를 넘나들며 천착해온 학습 과정은 다양한 관점에서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구술 채록과 빅데이터 연결해볼까? 


노인 혐오 문제에도 관심을 두면서 세대 간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기 위해 참여한 것이 <정치와 법> 수업에서 배운 ‘주민 참여 예산제’다. 노인들의 생계나 건강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 노인 복지 정책의 한계를 극복할 방법을 찾기 위해 먼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 면접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남해의 노인 인구 비율은 전국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를 보일 만큼 높았다. 정책을 설계하려면 먼저 문제 상황에 대한 맥락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전교생 대상 설문조사와 심층 면접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실제 <사회문제탐구>와 <사회탐구방법>에서 배운 조사 기법들이 큰 도움이 됐다. 


“설문조사를 해보니 노인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학생들은 많지 않았지만, 심층 면접 답변 결과는 조금 다르더라고요. ‘독거노인’ ‘질병’ 같은 수동적 이미지가 전체의 70%를 차지했고, 대부분 노인을 소통이 어려운 존재로 인식하더라고요. 노인의 주체성을 강조한 문화 복지 사업으로 장수 사진 촬영, 노후 설계 상담 등으로 꾸린 ‘나의 청춘에게’라는 이름의 세대 통합 축제를 기획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또 학교 앞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자서전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 봉사 활동도 구상해봤죠. 다른 세대의 삶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고, 노인들의 능동적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거든요. 처음에는 친구들이 어르신들의 말을 알아듣기 힘들어 고생하기도 했지만, 평생을 한 곳에서 살아온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마을의 역사와도 연결되어 있어 인상적이더라고요.”

 

이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 개인의 미시적 삶에 초점을 맞춘 서술 방식인 ‘구술사’다. 빅데이터가 사회 각 분야에 접목되는 만큼 프로그래밍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미적분>을 선택하기도 했던 승주씨였기에 구술 채록과 빅데이터를 결합해보고 싶어졌다. 


“네이버의 스마트 에디터는 사용자가 콘텐츠를 보다 편하고 자유롭게 제작할 수 있도록 돕는 툴인데요. 여기에 착안해 개인의 자서전 제작을 지원하는 앱을 구상해봤어요. 사용자들의 기록 공유에 기반한 빅데이터 분석으로 비슷한 관심사를 갖되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면 또 다른 정보가 탄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요즘 언론사에서 많이 하는 이메일 뉴스레터 구독과도 비슷한 개념이라고 봤어요. 초보적이지만 아날로그적 ‘이야기’와 디지털의 융합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경험이었죠.” 

 

나의 의지가 투영된 선택 과목들 


남해해성고는 전국 단위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농어촌 자율학교지만, 학년당 4학급의 소규모 학교다. 그만큼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넓히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한 교사가 여러 과목을 담당하는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진로선택 과목이 다양하게 개설된 것은 물론,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은 과제 탐구 과목들도 여럿 열렸다. 승주씨는 이런 학교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며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은 학문으로 인류학을 찾은 사례다. 스스로 선택한 과목들의 연결과 확장은 자기소개서 전반을 관통하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가 투영된 경험은 그만큼 각인될 것이기에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것이다. 


“수시 지원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생님들이 제가 각 과목을 선택했던 이유를 연결 지어보라고 조언해주셨어요. 실제로 수업을 들으면서, 또 수행평가를 준비할 때도 이 과목을 선택한 이유와 연관 지으려고 노력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연결고리가 많이 생겼고, 자기소개서에 담은 얘기들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어요. 만약 선택 과목을 결정하는 과정에 어려움을 느낀다면 교과서를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아요. 제 경우 선택군 안에 있었던 과목 중 <과학사> 대신 <심화국어>를 선택했는데, 물론 이 수업도 재미있었지만 자기소개서를 준비하며 생명과학과 연결해 생각해볼 거리가 많을 것 같아 <과학사> 교과서를 찾아 읽어보니 무척 흥미롭더라고요. 다시 선택할 기회가 생긴다면 들어보고 싶을 만큼요. 하하.” 


승주씨는 고교 시절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이어 읽은 <웅크린 말들>을 꼽았다. 글쓴이가 직접 만나 채록한 우리 사회의 가장 그늘진 곳에 있는 이들의 삶이 아프게 다가오더라고. 에어컨 수리 기사의 자살을 다룬 ‘수리되지 않는 노동’을 읽으며 50년도 더 지난 작품 속 ‘난장이’의 삶이 여전히 이어지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인류학적 텍스트로 곁에 있지만 ‘애써 말해야 하는 삶’들을 밝히고 싶은 포부를 갖게 했다”는 승주씨의 이야기를 굳이 전한다. 우리의 시선이 닿아야 할 곳이 너무도 많음을 절감하는 요즘이기에.


나를 보여준 학생부 & 자기소개서

 

학생부

1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학급별 세다토론에 참여해 난민 수용 문제 등을 다룸, 영자신문·영어 토론 동아리 활동 등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통합사회> 세계화 속 소수자 문제, 국제 분쟁, 저출산 고령화 문제, 난민 문제 등에 대해 발표, 세계화와 정보화를 연결시켜 SNS 등 미디어의 세계화에 대해 카드뉴스 제작, <사회문제탐구> ‘언론의 이성혐오 보도 프레임 분석과 보도 방향’을 주제로 탐구 보고서 작성, <통합과학> ‘다윈의 진화론’을 배우며 문화상대주의의 개념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분석

2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영자신문 동아리 활동, 세대 간 자서전 쓰기 봉사 활동 진행, 진로 독서 활동에서 <뉴스와 거짓말>을 읽고 제천 화재 사건에 대한 언론사의 오보 등 실제 사례를 찾아보며 언론의 가려진 면을 통찰, ‘가짜 뉴스 규제’를 논제로 제안해 토론 진행, 세대 간 갈등 해결을 주제로 노인들의 문화적 소외와 복지 혜택의 문제점 발표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독서>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을 읽고 인류학적 감수성을 갖춘 언론인이 되어 문화 차이로 인한 갈등을 해결하고 싶다고 발표, <심화국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분배의 불평등 문제 탐색, <영어권문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맡아 아파르트헤이트와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고찰, <정치와 법> 지방자치 단원에서 주민 참여 예산제를 배우고 노인 문화 복지 정책 ‘나의 청춘에게’ 고안, <사회·문화> 미디어 분석을 통해 인종주의나 오리엔탈리즘이 소수자 문제의 배경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문화인류학적으로 접근, <윤리와 사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장자의 사상으로 성찰, <사회탐구방법> 다양한 연구 방법을 배운 뒤 문화기술적 연구에 관심이 생겨 ‘사이버 폭력이 이루어지는 미디어 플랫폼별 특성 비교 연구’ 계획 

3학년

▒ 창의적 체험 활동 
영자신문 동아리에서 코로나19를 둘러싼 인종주의적 논쟁점 조사 및 분석, 빅데이터와 구술사, 미디어 등을 연결시킨 앱 제작에 도전 등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미적분> 통계학과 빅데이터를 탐구하다 초월함수의 미적분을 자세히 알고 싶어 수강, <심화영어Ⅰ> 인류학의 특징과 이점 영작, 미국 내 인종주의를 언론 보도와 연계해 발표, <세계지리> ‘포함과 배제 사이, 경계가 갖는 의미’를 주제로 발표하며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필요한 가치로 다양성 제시, <세계사> 제국주의 등 인종을 근거로 한 세계사적 사건 조사  


선택과목

 

 ▒ <사회문제탐구> 
<사회탐구방법>  1학년 지정 과목으로 <사회문제탐구>를 배우면서 좀 더 심화된 탐구를 해보고 싶어 2학년 때 <사회탐구방법>을 선택했다. 연구 주제를 정하는 방법부터 연구를 진행하는 구체적인 기법까지 배울 수 있었다. 


▒ <영어권문화> 
 영어권 국가의 문화 전반을 배우는 데 흥미를 느껴 선택한 과목이다. <사회탐구방법> 수업에서 배운 문화기술적 연구(현지인 혹은 관찰 대상의 관점에서 그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하는 데 목표를 두는 연구), 참여관찰법(연구 대상 지역이나 집단의 구성원이 되어 직접 활동에 참여하면서 자료를 수집·분석하는 방법) 등에 재미를 느낀 것도 계기가 됐다. 


▒ <생명과학Ⅰ> 
 1학년 때 <통합과학>을 배우면서 진화론에 흥미를 느껴 선택했다. 생명과학이 다른 학문과 연계된 사례를 조사하며 사회학적 현상을 생물학적 지식을 이용해 탐구하는 학문인 ‘사회생물학’에 대해 알아보고, 유전병 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의 심각성과 우생학을 다룬 모자보건법 14조 등 잘못된 법률과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 <미적분>  
빅데이터를 중심으로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프로그래밍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수학을 심화해 공부하고 싶어 선택한 과목이다. 데이터 분석의 주관성을 언론 보도와 연결해 데이터 저널리즘의 사례를 분석하고, 정량적 사회과학과 직관적·주관적인 인류학적 연구 방법을 결합하면 인간 행동에 대한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  <정치와 법> <사회·문화> <윤리와 사상> <세계지리> <한국지리> <세계사> 
 남해해성고의 사회 과목들은 1년에 걸쳐 수업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학기제로 개설되어 있어 여러 과목을 선택 이수할 수 있는 구조였다. 인류학과 모두 연관되는 과목이라 생각해 사회 과목은 최대한 다양하게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