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 모방한 지능형반도체 연구로 기술 한계 극복하고 싶어요
임동현 | 서울과학기술대 지능형반도체공학과(대전 대신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불평등과 양극화를 줄여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길 바랐다. 난 무엇으로 기여할 수 있을까,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꿈은 어린 친구들의 성장을 돕는 초등교사였다. 한데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함이 느껴졌다. 기술을 통해 세상을 직접적으로 바꾸는 공학자가 눈에 들어왔다. 특히 미세한 입자들의 이동을 다루는 전자공학에 관심이 생겼다. 고교에 입학해 다양한 진로 프로그램과 동아리 활동을 경험하며 당시 화두였던 4차 산업혁명이 바꿀 세상, 그 기반이 되는 반도체에 ‘필’이 꽂혔다. 그중에서도 ‘인간의 뇌’를 모방한 지능형반도체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 분야를 특화한 서울과학기술대 지능형반도체공학과의 교육과정을 보니, 이거다 싶었다. 전공 과목이 모두 지능형반도체 분야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임동현씨에게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취재 정애선 기자 asjung@naeil.com
사진 이의종
“사회적 니즈에서 반도체 패러다임의 변화를 고려했을 때 반도체 산업은 180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현씨의 자기소개서 첫 문장은 꽤나 도전적이다. 그만큼 지능형반도체는 고교 생활 내내 동현씨가 집중해온 분야였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전력 소모 문제의 해결과 집적화 한계의 극복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어요. 현재는 많은 연산량을 수행하기 위해 높은 전력이 소모될 뿐 아니라 반도체 집적화 발전 속도도 점차 한계에 직면한 상황이거든요. 인간의 두뇌는 밥 한 공기 수준의 작은 열량으로도 엄청난 연산들을 해내잖아요. 이처럼 인간의 뇌 구조를 모방한 인공 신경망 기술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더라고요.”
전력 소모량 압도적 우위, 탐구 활동으로 입증
동현씨가 2학년 때 수행한 탐구 활동의 주제는 ‘차세대 뉴로모픽 칩의 특성 및 AI 자율주행 로봇 활용성에 대한 연구’였다.
“뉴로모픽 칩은 국내 반도체 전문 기업인 네패스가 출시한 교육용 칩으로, 메모리와 중앙처리장치를 합한 구조로 만들어졌어요. 뉴로는 신경, 모픽은 형상, 즉 사람의 뇌신경을 모방한 차세대 반도체로 빠른 처리 능력을 구현하면서 전력 소비량을 낮춘 것이 특징이죠.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만, 현재의 기술로는 역부족이에요. 시중에 판매되는 뉴로모픽 칩과 기존 하드웨어로 자율주행 로봇을 만들어 성능과 전력 소모량을 비교해보는 실험을 해보기로 했죠.”
네패스는 현재 뉴로모픽 인공지능 칩 ‘NM500’과 함께 개발 소프트웨어 ‘뉴로실드’를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동현씨는 실험을 위해 먼저 엔비디아사가 개발한 ‘젯슨나노’를 탑재한 자율주행 로봇과 뉴로실드를 탑재한 자율주행 로봇을 제작했다. 내장된 장애물 회피 학습 예제를 코딩하고, 기계 학습을 진행한 뒤 정확도를 측정해보니 젯슨나노를 탑재한 로봇은 96%, 뉴로실드를 탑재한 로봇은 89%의 정확도를 보였다. 그러나 전력 소모량에서는 뉴로실드를 탑재한 로봇이 압도적인 우위를 나타냈다.
“100번의 장애물 회피 실험 중 젯슨나노는 4번 실패했고, 뉴로실드는 11번 실패했어요. 하지만 평균 소비 전력을 측정해보니 뉴로실드는 210mW, 젯슨나노는 1천230mW를 소모하더라고요. 기존 반도체가 연산 능력에서는 정확도가 뛰어났지만, 동일한 연산 작업 수행 시 NM500의 소모 전력이 월등히 적다는 점, 뉴로모픽 시스템의 정확도 향상 연구들이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어요.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될 수밖에 없는데 현재 배터리 기술은 한계가 있거든요. 전력 소모를 줄여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뉴로모픽이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겠더라고요.”
기술이 사회 양극화 해소에 기여할 수 있을까?
뉴로모픽 탐구 활동을 진행하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은 과연 4차 산업혁명이 사회 양극화 해소에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당시 읽은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이 고민의 단초가 되어줬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개인용 디바이스는 소수층만 사용하는 기기였을 거예요. 지금 스마트폰은 전 국민의 일상이 됐잖아요. 규모의 경제로 인해 생산량이 늘면서 가격은 내려갔어요. 스마트폰은 개발도상국에서도 대부분 사용할 정도의 인프라가 구축됐어요. 우리는 비만을 걱정하는데 지구촌 어느 곳에서는 기아를 걱정하는 현실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지금보다 진전된 최첨단 기술이 나오게 되면 분명 저소득층이나 개발도상국도 이 기술의 수혜를 받아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동현씨가 고교 시절, 창업 관련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던 것도 이런 경험을 쌓기 위해서였다. 교육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도전 K-스타트업 2020 학생창업유망팀 300’에 도전한 동현씨가 구상한 창업 아이템은 ‘모마카세’였다.
“당시 외식 문화로 ‘오마카세’가 한창 유행했어요. 가격이 비싼 게 흠인 이 경험을 누구나 즐길 수는 없을까 생각하면서 구상했던 아이템이에요. 요리에 재능이 있고, 창의력이 뛰어나도 식당을 열려면 임대료 등 높은 비용이 요구되죠. 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공유주방’을 떠올렸어요. 요리사는 앱을 통해 공유주방을 대여하고, 소비자는 공유주방 사용자에게 원하는 메뉴의 오마카세를 예약해요. 요리사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멀티사이드 플랫폼인 셈이에요. ‘모두의 오마카세’를 줄여 ‘모마카세’라고 이름 지었죠. 실제 요식업에 종사하는 분들 인터뷰도 하고, 전문 투자자의 피드백을 받으며 유튜브에 사업 설명 영상도 만들어 올렸어요. 모의 크라우드 펀딩에서 7억8천만 원을 달성하며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됐죠.”
<고급수학> 대신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이유
동현씨의 이런 면모는 선택 과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공대 공부에 필요한 <미적분> <기하> 외에도 <확률과 통계>까지 이수한 데는 탐구 활동을 진행하면서 이 과목을 꼭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연구 신뢰도에 통계 처리가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학과 체험 프로그램 등에서 교수님들이 이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요즘 이공계로 진학할 학생들이 선택형 수능 때문에 <확률과 통계>를 배우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꼭 배워야 한다는 거예요. 당시 친구들은 대부분 어려운 과목을 이수했다는 걸 보여주려고 <고급수학>을 선택했지만, 전 <확률과 통계>를 택했어요. 이수자가 26명밖에 되지 않는 데다, 상대평가 과목이어서 성적 경쟁이 정말 치열했어요. 그래도 이때 배운 게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2학년 때 한 연구에서는 전력적 이점은 입증했지만, 경제적 이점은 결론으로 도출하지 못했어요. 3학년 수행평가에서 통계적 분석을 통해 경제적 이점까지 보강한 데는 이 과목의 역할이 컸죠.”
그런 면에서 동현씨는 당장의 성적, 당장의 수능에 대한 강박보다는 대학에서 어떤 공부를, 왜 하고 싶은지 깊게 고민해보기를 추천한다고 했다.
“교수님들께서 그런 얘기를 많이 하세요. 단순히 반도체가 유망하다니까, 취업이 잘될 것 같아서 왔다면 일찌감치 전과를 추천한다고요. 공부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명확히 동기부여를 하지 않으면 지속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에요. 꿈은 언제든 바뀌게 마련이지만, 적어도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열심히 고민해보면 좋겠어요. 그 고민을 따라가다 보면 길이 보일 거라 믿어요.”
나를 보여준 교과 세특 & 선택 과목
학생부
1학년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수학> 전자공학에 관심이 많아 ‘수학 교사 되기’ 활동에서 반도체 공정의 여러 부품을 예로 들어 명제의 역과 대우를 이색적으로 설명, <통합과학> 버스 급정거 시 승객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지해주는 발 고리 ‘버쓰레빠’ 고안, ‘차세대 반도체와 에너지 하베스팅의 필요성’ 주제로 웨어러블 기기의 발전과 함께 배터리 충전의 난제 해결 방향 제시
2학년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물리학Ⅰ> 미래의 방대한 정보량 처리를 위해 고성능 인공지능과 저전력 반도체 기술의 중요성 발표, 인간의 신경계 구조를 모방해 병목 현상을 해결한 ‘뉴로시냅틱 기술’의 구조 설명, <생명과학Ⅰ>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뉴런의 정보 전달 과정을 인공적으로 모방한 딥러닝 알고리즘과 상용화된 뉴로모픽 칩을 활용한 자율주행 로봇 제작을 심층적으로 탐구해보는 계기가 됨
3학년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미적분> 뇌를 모사한 뉴로모픽 하드웨어의 구조가 어떻게 저전력 기능을 수행하는지 미분을 적용한 탐구 활동 진행, <확률과 통계> ‘자율주행 연산에서 뉴로모픽 칩의 전력 우위 실험’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한계를 발견하고 배운 내용과 조건을 활용한 칩의 비용 우위를 계산해 발표
선택 과목
▒ <물리학Ⅱ> <고급물리학> <물리학Ⅱ>는 공학 전공에 필수라고 생각했기에 기본적으로 선택했다. <화학Ⅱ>와 <고급물리학>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대학에서 배우는 <일반화학>이 <화학Ⅱ>에서 다루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고급물리학>으로 최종 결정했다. <물리학Ⅱ>에서 다루지 않는 회로 분석법을 새롭게 배우는 등 반도체를 위해 필요한 심화된 내용을 접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 <확률과 통계> 연구 신뢰도 검증을 위해 <확률과 통계>를 꼭 배울 것을 추천한 대학 교수들의 조언을 들으며 선택했다. 서울과학기술대 지능형반도체공학과 교육과정을 확인해보니 <확률과 통계>에서 배우는 내용을 따로 배울 기회가 없는 것 같아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이수자가 워낙 적어 고전했지만, 이때 배운 내용으로 2학년 때 진행한 연구 활동의 경제적 이점을 새로 보강하는 등 도움이 많이 된 과목이다.
▒ <국제경제> 창업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경제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할 것 같아 공동 교육과정으로 신청한 과목이다. 학교 교육과정에서는 사회탐구 일반선택 과목들을 선택할 수 없는 구조여서 <경제>를 배우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다. 공동 교육과정이 그런 면에서 대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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