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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수시 합격생 릴레이 인터뷰] 최권녕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AP세계사> <국제정치>  배우며 라틴 아메리카  역사와 문학에 매료

최권녕 |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서울 하나고) 

 

고교 3년간 스페인어를 배운 적은 없다. 다만, 다양한 선택 과목이 개설된 하나고의 교육과정 덕분에 <국제정치> <AP세계사> <세계사> 수업을 통해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 역사, 사회에 관심을 두게 됐고, 문학 수업을 이수하면서 여러 나라의 작가와 작품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외고나 국제고 학생들처럼 어학에 경쟁력은 없었지만, 계열 적합형 전형으로 고려대 서어서문학과에 합격한 이유였다. 독서를 통해 다양한 세계를 엿볼 수 있고,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이 좋아 작가를 꿈꾼다는 최권녕씨를 만났다. 작가를 꿈꾸지만 국어국문학과가 아닌 서어서문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고, 선택 과목을 통해 서어서문학과에 관한 관심을 어떻게 연결해나갔는지, 독서와 함께한 그의 고교 3년을 담았다.

 

취재 민경순 리포터 hellela@naeil.com 

사진 이의종

 

 


 

책을 읽는 게 좋아 꿈꿨던 작가,관심의 시작은 책

 

중학교 때 과고를 준비하며 수학과 과학 공부에 매진했다. 어느 순간 과학 공부가 생각만큼 재미있지 않았다. 답이 있는 척하지만 억지로 답을 짜맞추는 과목(?)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흥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이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방향을 틀었다. 


“어릴 적 책을 많이 읽었어요. 사실 어렸을 때 만화책을 비롯해 다양한 책을 읽거나, 영화 보는 거 말고는 특별히 할 게 없었던 것 같아요. 영화나 책을 보며 나만의 세계를 담고 싶다고 생각했죠. 틈틈이 노트와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고교 때 창작 글쓰기 공모전에도 출품하며 좋아하는 일을 자유롭게 해나갔죠.”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과 경쟁하며 처음엔 자존감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교육과정이나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정해진 공부를 맹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과목을 선택하고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어 좋았다. 


“책을 읽으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삶을 경험할 수 있어 좋았어요. 나의 세계관을 담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점차 강해졌죠. 시험 기간에 읽는 책은 너무 재밌었어요. 공부하기 싫을 때 잠깐씩 읽는 책이 힐링이고 즐거움이었죠.”


권녕씨의 감수성이나 문학에 대한 열정은 수업 시간에도 빛을 발했다. <수학> 수행평가 때 나눗셈에서의 몫과 나머지를 내리사랑과 부모의 마음으로 표현했고, <문학> 시간엔 ‘월요일 수업’이란 제목으로 일상생활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연시조를 창작했다. <심화국어> 시간의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키워드 수행평가에선 ‘비행’이라는 단어를 선택해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와 비행기를 만들었던 라이트 형제를 소개하며 인간의 본질에 접근했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비교 분석해 인간의 비행이 새들의 비행과 다른 점도 조사 발표했다. 


처음엔 국어국문학과 진학을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살아가는 세상과 다른 이야기,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던 것일 뿐 국문학 자체를 공부하고 싶은 건 아님을 깨달았다. 여러 선택 과목을 배우며 라틴 아메리카에 관심이 생겼고, 서어서문학과가 개설된 대학이 몇 없다는 것도 서어서문학과로 진로를 정하게 된 이유였다. 

 


현실 세계를 환상적으로 묘사한 장르,  마술적 사실주의

 

권녕씨는 여러 장르 중 환상과 현실이 섞인 마술적 사실주의에 관심이 많았다. 현실, 사회 고발적인 이념을 의미하는 ‘사실주의’와 판타지, 상상, 환상을 의미하는 ‘마술’이 결합했다. 


<영어> 시간에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역사를 다룬 영화 <The Butler>를 시청하고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오멜라스는 유토피아에 가까운 마을이에요. 평화롭고 완벽한 세상이 유지되기 위해선 지하실에 갇힌 채로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한 아이의 희생이 필요해요. 아이는 밤마다 살려달라고 괴성을 지르죠. 오멜라스 사람들은 이 아이의 존재를 어느 순간 알게 돼요. 그 아이를 세상으로 나오게 할 순 있지만, 오멜라스에서 누렸던 행복은 사라지게 되죠. 행복한 도시에 살며 어린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걸 선택할 수도 있고, 고통받는 아이를 무시하고 행복한 삶을 즐길 수도 있어요. 혹은 아이를 세상에 나오게 하고 도시를 떠날 수도 있고요. 어떤 선택을 할까요?”


흑인과 지하에 갇힌 아이를 비유하며 당시 인권 상황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에세이를 작성해 <영어> 시간에 발표했다. <일본어Ⅰ>을 배우면서 일본 문학에도 관심을 드러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고 권녕씨는 온천에서의 생활은 삶의 목적을 잃은 것으로 생각했다. 어느 순간 온천에 간 이유를 잊어버리고 온천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극 중 인물들의 모습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며 행복을 잊고 사는 현대인의 모습과 겹쳐졌다. 


“일본의 10대들이 미아키 스가루 작가에게 왜 열광하는지 궁금해 <너의 이야기>를 읽었어요. 자신의 불행한 시절을 지워버리는 약을 먹었는데 기억이 사라지는 대신 가공된 기억이 머릿속에 생성되죠. 과학의 발달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작가의 세계관과 어우러져 몰입도를 높였더라고요.” 

 


<AP세계사> <국제정치> 배우며  국제 사회에 대한 관심 높아져

 

권녕씨는 1학년 때 <영어권문화>를 비롯해 <영미문학Ⅰ>  <영미문학Ⅱ> <국제정치> <AP세계사> <현대사회와 철학>  <고전문학감상> <비교문화> 등 선택한 과목만 20여 개에 달했다. 


“여러 나라의 문학, 문화, 역사와 관련된 과목들을 다양하게 선택했죠. 2학년 1학기 때 <세계사>, 2학기엔  <AP세계사>와 <국제정치>를 선택했어요. 세 과목이 연결된 느낌이었어요. 이전에는 단편적인 사건 중심으로 이해했다면 수업을 통해 각 나라의 문화, 국제적 상황 속에서 역사를 이해하면서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을 키웠죠.”


국제 사회에 대한 관심은 동아리 활동으로도 이어졌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읽고 친구들과 스터디를 하면서 북한, 미얀마,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 구조, 원조 실효성에 대해 논의했다. 


“문학 작품이 당시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비평 스터디를 통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며 러시아 사회에 만연해 있던 종교적 회의주의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어요. 남미의 마술적 사실주의 대표 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처음 접할 땐 절대론적 관점으로만 해석했어요. 그런데 <AP세계사>에서 콜롬비아 바나나 공장 학살 사건에 대해 배우고 나니 마르케스의 작품이 이 사건을 형상화했다는 걸 알았죠.”


한국 문학에도 관심을 가졌다. 황석영의 <손님>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과 비교하며 역사적 사건을 작가가 작품 속 등장인물에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냈는지 분석했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 입시에만 몰입되지 않길

 

권녕씨는 다양한 책을 읽고 문학과 역사로 관심을 확장한 것을 고교 3년간 가장 의미 있었던 활동으로 꼽는다. 자신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활동이 독서라고 강조한다.


“독서 습관이 정치, 사회, 문학 등으로 이어졌고 교과목 공부에도 도움이 됐어요. 수행평가나 탐구 활동을 할 때도 읽었던 책이 모티브가 될 때가 많았죠. 책은 우리의 인문학적 소양을 키워주고 철학적 질문도 계속 던져요. 종합 전형은 자신을 꾸미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전형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가치를 두며 어디에 관심이 많은지를 생각하다 보면 종합 전형 준비도 자연스레 되더라고요.”

 


나를 보여준 교과 세특 & 선택 과목


학생부


1학년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수학> 수행평가 과제로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마음을 다항식과 나머지 정리 단원을 기반으로 표현한 작품을 제출함, <영어>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의 역사를 다룬 영화 <The Butler>를 시청하고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 등장하는 지하에 갇힌 아이와 흑인을 비유하여 당시 인권 상황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에세이를 영어로 작성, 평소 깊은 사고력과 독서량을 두루 보여줌, <일본어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고 온천에서의 생활은 삶의 목적을 잃은 것이라고 발표함


2학년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문학> 학교에서 겪는 여러 경험 중 월요일 수업에서 느끼는 피곤함을 소재로 선정하고 다양한 표현법을 활용해 일상생활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연시조 ‘월요일 수업’을 창작함, <세계사> 수업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생김, 다양한 관점을 배우고 싶어 <탈세의 세계사>를 읽고 ‘탈세라는 여가 해석의 새로운 관점, 그 한계와 참신성에 대해서’라는 서평을 작성함, <AP세계사> 문학사와 언어의 역사에 관심이 많음 


3학년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사회·문화> 사회학자와 사회사상에 대해 관심이 많고 관련 서적을 찾아 읽었으며, 사회사상을 반영한 문학 작품에 대해 분석하는 글을 작성함, <AP세계사> 문학을 통한 예술사에 관심이 있으며 유럽 대륙에 위치하면서도 오랜 기간 이슬람의 지배를 받아 독특한 정취가 남아 있는 스페인의 역사에 관심을 가짐, <문학개론> 문학 작품이 창작된 시대 및 사회 문화적 맥락과 작품의 내용 및 주제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이해, 깊이 있는 분석의 매개가 되는 날카로운 질문을 제기하고 깊이 있게 소통하는 태도를 보임

 


선택 과목


▒ <AP세계사>  <세계사>의 심화 과목이라는 얘기를 듣고 선택했다. 여러 나라의 문화, 철학,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국제적 상황 등을 알게 되면서 사회는 여러 현상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영미문학> <현대문학감상> <문학개론>  작가를 꿈꿨기에 문학과 관련된 선택 과목은 빼놓지 않고 선택했다. 영미 시를 읽고, 창작했으며, 영미 소설에 등장하는 기사도의 개념이나 문학적 장치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치를 비롯해 소설이 쓰인 시대의 배경을 함께 공부할 수 있어 좋았다.


▒ <국제정치>  역사, 사회, 문화를 이해하려면 그 나라가 처한 정치적 사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AP세계사>와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는 점도 선택 이유였다. 하나의 단편적인 사건에만 관심을 두기보다 그 시대의 분위기와 다른 나라들의 상황 등을 함께 바라보는 안목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됐다.

 

▒ <현대사회와 철학>  책을 읽을 때 현실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사실주의 장르를 좋아했기에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사회 문제나 이슈를 여러 관점에서 탐구, 분석하고 이를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과정이 의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