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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수시 합격생 릴레이 인터뷰] 이승원 겐트대 글로벌캠퍼스

고교 3년간의 슬기로운 탐구생활
환경 지키는 ‘적정기술가’ 꿈꾸는 계기였죠

이승원 | 겐트대 글로벌캠퍼스 (전남 여수고)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고 생각했다. 한창 친구들이 학원 다니랴 수능 준비하랴 바쁠 때, 과학 실험과 탐구대회 준비에 빠져 있었다. 책상에 앉아서 하는 딱딱한 이론 공부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생활 속에서 보고 느낀 문제점을 해결하고, 삶과 맞닿아 있는 연구를 하는 게 훨씬 재밌었다. 고등학교를 과학중점학교로 진학한 것이 진로에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칠 줄은 몰랐다. 겐트대 글로벌캠퍼스에 진학한 이승원씨의 이야기다. 친환경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는 ‘적정기술가’를 꿈꾼다는 그를 만났다.


취재 양지선 기자 jsyang@naeil.com  

사진 이의종

 

 

 


 

과학중점학교, 탐구에 눈 뜨는 계기가 되다

 

승원씨가 나온 전남 여수고는 과학중점학교로 교육과정에서 과학·수학 교과의 비율이 45% 이상이도록 편성한다. 실제로 학교는 <수학Ⅰ> <수학Ⅱ>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등 수학 5과목과 과학탐구 Ⅰ·Ⅱ 8과목을 모두 2~3학년에 나눠서 듣도록 지정했다.


과학·수학 과목을 다양하게 들으며 흥미를 느끼게 된 것도 있지만, 그보다 승원씨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친 부분은 학교가 탐구하는 습관을 기르게 했다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자기 주도적으로 과제를 연구하고 탐구하는 활동이 많았어요. 가족들과 캠핑을 많이 다녔는데, 이전에는 캠핑장에 쓰레기가 많이 쌓여 있는 걸 봐도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저 많은 쓰레기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관점으로 바뀌었죠. 자연스럽게 주변 환경과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를 해결할 방안을 실험을 통해 찾게 됐어요.”


승원씨의 ‘탐구 본능’은 단지 수업 시간 과제로 끝나지 않았다. 교실 앞쪽 칠판에 붙여진 교내 대회 안내문이 눈길을 끌었다. 학교는 다양한 탐구대회를 운영했는데, 이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발산할 기회였다. 승원씨는 가정에서는 폐식용유 처리가 어려워 캠핑장에서만 튀김 요리를 하게 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리고, 폐식용유를 재활용해 비누로 만드는 장치를 생각해냈다. 


아이디어는 실험을 통해 구체화했다. 폐식용유와 EM 유화수를 섞어 비누 제조 실험을 하고, 아두이노를 활용해 혼합량에 따른 온도와 습도 변화 데이터를 얻었다. 교무실을 찾아가 지도교사도 직접 섭외하며 열의를 보였다. 처음으로 출전한 과학 발명품 아이디어 대회에서 금상을 차지한 승원씨는 이후 고교 3년간 본격적으로 과학탐구의 길을 떠났다. 

 


일상에서 접한 환경 문제를 연구 주제로

 

승원씨에게 ‘학교생활=탐구생활’이라는 공식이 세워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교과 시간은 물론 동아리 시간까지 활용해 탐구 활동에 몰입했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환경 문제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연구 주제로 삼았다. 교과 시간에 배운 이론 지식을 활용해 이를 실생활에 접목하려는 호기심과 도전의식이 강했다. 


<화학Ⅰ> 수업에서 배운 중화반응을 이용해 플라스틱 컵에 프린팅된 안료를 친환경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을 찾았다. 레몬·오렌지 추출물, 옥수수 우린 물, 베이킹소다, 과탄산소다 등 세척 효과가 있는 친환경 용액을 혼합하고 제거 효과를 실험했다. 또, 바이러스 제거에 효과가 있는 이동식 플라즈마 발생 장치를 발명하는 과정에서 함수와 방정식 등 수학적 개념이 활용된다는 점을 배우고, <미적분> 수업에서 이를 연계해 ‘친환경 기술 플라즈마와 미적분’을 주제로 발표했다.


2학년 때 수강한 <물리학Ⅰ> 시간에는 음향 부양의 원리를 활용한 집게 형태의 청소 장치를 발명했다.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일어난 배관 폭발 사고 기사를 접한 것이 계기였다. 


“공장 배관에 찌꺼기가 쌓여 있으면 폭발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크고, 이로 인해 인명 피해와 가스 누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런데 배관 청소를 하려면 공장 가동을 멈춰야 해서 경제적 손실이 크다는 문제점도 있었죠. 음향 부양의 원리를 적용하면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찌꺼기가 가라앉지 않게 음파로 띄워서 배관이 막힘없이 흐르게 만드는 거예요. 공장 가동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으로 찌꺼기를 없애는 방법이었죠. 배관 두께에 맞춰서 청소할 수 있는 클리닝 클립 장치를 아두이노 기반으로 만들었어요.”


해당 아이디어로 승원씨는 제2회 한국코드페어에서 ‘SW를 통한 착한 상상’ 부문 대상을 받고, 이어 3학년 때는 2021 국제과학기술경진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는 기회를 얻었다. 국내를 넘어 글로벌 무대에서도 발명 인재로 성장할 가능성을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학교 성적보다는 탐구 실험과 대회 준비가 더 중요했던 승원씨였지만, 그 와중에도 학업을 놓지는 않았다. 과학중점반은 교육과정이 대부분 정해져 있기 때문에 과목 선택권이 넓지 않은 게 아쉬워 공동 교육과정으로 <고급수학Ⅰ> <고급화학>을 들었다. 특히 화학을 더욱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 선택한 <고급화학> 시간에는 친환경 자동차에 사용되는 고분자 에너지 전해질막을 탐구하며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을 이어갔다. 방학 때는 K-MOOC(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에서 <신제품 설계론>을 들으며 발명에 대한 전문 지식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 

 


국제 무대로 시야를 넓히다

 

탐구 활동에 역량을 보인 승원씨가 과학 특기자 전형으로 입시를 준비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대회 수상 경력도 다양했고, 학생부는 그동안 연구해온 내용들로 꽉 채워졌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 


하지만 수시에서 아쉽게 불합격했다. 예비 번호를 받았지만 과학 특기자 전형은 워낙 뽑는 인원이 적어 추가 합격률이 낮았다. 뜻하지 않게 정시를 준비하게 되면서 수능을 치렀지만, 성적표도 확인하지 않을 정도로 기대가 없었다. 막연한 마음에 여수시행복교육지원센터를 통해 정시 원서 접수 상담을 하던 중, 겐트대를 추천받았다.


“과학 특기자 전형에 집중했기 때문에 수능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시를 지원하려니 난감했어요. 그러던 중 겐트대 글로벌캠퍼스를 알게 됐는데, 검색해보니 생명과학 분야에서 특히 이름이 나 있고 교육과정이 실험과 실습 위주라고 해서 끌렸어요. 부모님과도 상의해보니 저에게 잘 맞는 학교인 것 같다고 하셔서 안심하고 결정했죠.”


인천 송도에 위치한 겐트대 글로벌캠퍼스는 생명과학 분야에 있어 세계적인 연구 중심 대학인 벨기에 겐트대의 교과 과정을 국내 및 동아시아 실정에 맞게 적용하여 운영하고 있다. 겐트대 입학전형은 국내 입시와 별도로 운영되어 수시, 정시 횟수에 포함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일반 전형은 입학 시험과 공인영어성적으로 선발하고, 승원씨와 같은 국내 고등학생을 위한 고교장 추천 전형에서는 학교 성적과 학생부를 중심으로 입학생을 선발한다. 학생들은 학부제로 들어온 후 1~2학년 때 기초 수업을 듣고 3학년 때 분자생명공학과 식품공학과 환경공학과 중 전공을 선택한다. 승원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환경 문제에 관심을 보여 관련 연구를 진행해왔던 만큼 환경공학과 쪽으로 기운 상태지만, 다양한 과목을 들어보며 전공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둘 생각이다. 


“중학교 때는 딱히 꿈이 없었는데, 고등학교 때 학교생활을 하면서 적정기술가라는 직업을 꿈꾸게 됐어요. 적정기술가는 그 나라, 그 지역에 맞는 적정한 기술을 개발해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는 역할을 해요. 이전에는 제 고향에 맞춰 생각했었는데, 이제 시야가 국제로 넓어졌어요. 4학년 1학기 때 유럽 본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도 기대가 되고요. 지금 고등학생들도 딱히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다면 저처럼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우연히 나에게 딱 맞는 길을 찾게 될 거예요.”

 

 


나를 보여준 교과 세특 & 선택 과목

 


 

학생부

 

1학년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통합과학> 효소의 기능을 알아보기 위해 생간을 과산화수소수에 넣어 반응을 관찰하는 실험 진행, 폐식용유에 효모인 EM을 사용해 고체화되는 적정 비율을 실험, <과학탐구실험> 드론에 관심을 갖고 양력과 작용 반작용 법칙에 의한 비행 원리를 조사해 보고서 작성, 에너지 절약 건축 설계에 대해 공부하고 현재 살고 있는 고장을 친환경 에너지 도시로 만드는 설계도 작성

 

2학년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물리학Ⅰ> 자동차 추진체의 조합을 달리해 친환경 자동차 제작을 주제로 탐구 활동, 음향 부양의 원리를 이용해 공장의 배관 청소 시 사용할 수 있는 집게 형태의 장치 고안, <화학Ⅰ> 중화반응을 이용해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프린팅된 안료를 친환경적으로 제거하는 실험 진행

 

3학년


▒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미적분> 친환경 기술 플라즈마와 미적분에 대한 주제로 PPT를 만들어 발표, 생명과 환경 분야에서 활용 가능한 플라즈마의 기본 원리와 특징 설명, <기하> 위성 안테나·손전등 등 이차곡선의 개념이 일상생활에 활용되는 예시 설명, <화학Ⅱ> 물의 표면장력을 주제로 소금쟁이를 만들어 띄우는 실험, 에탄올과 물을 동전 위에 떨어뜨려 표면장력을 비교해보는 실험 진행

 

 

선택 과목


▒ <과학과제연구>  이론 수업보다 실생활과 연관된 주제를 찾아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직접 실험해보며 연구하는 수업을 좋아한다. 
이해가 잘 안 되는 상태에서 막연하게 암기하는 건 어렵지만, 직접 과제를 수행하며 얻은 지식은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 <생활과 윤리>  지구 온난화 해결에 관심이 많고, 이와 연관된 연구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사회 과목 중 환경 문제에 대한 윤리적 쟁점을 다루는 <생활과 윤리>를 선택했다. 책임 윤리에 대해 학습하고 미래 세대 환경에 관한 책임 문제를 토론하는 과정에서 우리 세대 인식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 <고급수학Ⅰ>  공동 교육과정으로 인근 학교에 가서 직접 들었다. 대학 과정에서 배우게 될 수학을 미리 맛보고 싶어 신청했다. 내용이 어려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학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내용이어서 오히려 흥미로웠다.

 

▒ <고급화학>  온라인 공동 교육과정으로 수강했다. 화학에 흥미가 있고, 친환경 에너지와 연료에 관심이 많아 관련 연구를 할 수 있는 과목을 선택했다. <화학Ⅰ> <화학Ⅱ>와 내용은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전문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