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 활동의 키, 독서
책-교과 교집합 찾아라
2학기 말, 정기고사가 끝나면 겨울방학이 찾아옵니다. 이때 꼭 해야 할 활동 중 하나가 ‘독서’죠. 사고력과 문해력을 키워주는 본래의 장점에 학습·입시 면에서도 이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당수 학생들은 독서와 그 활용법을 여전히 까다롭게 여깁니다. ‘그럼에도 독서!’에서 소개한 유형별 독서 활용법에 이어 대학생 선배들에게 고교 시절 독서 활동을 더 상세하게 물었습니다. 선배들이 풀어준 도서 선택 기준과 독서법, 탐구 활동이나 전공 탐색과 연계한 방법을 따라 올겨울 한결 더 쉽고 유용한 독서에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취재 정나래·조나리 기자 lena@naeil.com
사진 비상교육 <통합과학> <정치와 법>·개마고원 <지방 분권이 지방을 망친다>·북라이프 <세계를 바꾼 12가지 신소재>
이세상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1학년
(충남 논산대건고 졸업)
매일 밤 뉴스를 보는 게 좋았던 이세상씨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법률가나 행정가 쪽으로 진로의 가닥을 잡았다. 교과 공부도 <정치와 법>을 가장 좋아했다. 교과서의 설명이 부족하거나 좀 더 깊게 파고들고 싶은 부분이 생기면 바로 관련 서적을 찾았다고 한다. 이런 과정은 탐구 활동으로도 이어졌고 희망 전공이었던 행정학과 진학에도 도움이 됐다. 또한 독서를 통해 희망 진로에 대한 확신도 생겼다는데, 이세상씨가 고교 시절의 독서 활동을 더욱 강조하는 이유다.
취재 조나리 기자 jonr@naeil.com
Q. 고교 시절에 독서가 교과 학습이나 전공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어렸을 때부터 뉴스가 재밌었어요. 구체적으로 진로를 선택한 시기는 고등학교 입학 후였죠. 그 무렵부터 법이나 행정, 정치 등 관심 분야가 구체화되더라고요. 관련 분야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고요. 독서 활동으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부분은 막연하게 희망했던 진로나 전공에 대해 확신을 갖게 해줬다는 거예요. 또 탐구 활동에도 활용하다 보니 교과 공부나 입시에도 도움을 받았죠. 결과적으로 대학에 와서도 전공 공부에 만족하고 있어요.
Q. 고교 시절의 책 선택 기준과 기억에 남는 독서 활동은?
보통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좀 더 깊이 알고 싶을 때 독서를 활용했습니다. 또 평소의 지적 호기심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찾아보기도 했고요. 예를 들자면 <지금 다시 헌법>이라는 책이 있는데, 헌법의 기본 원칙이나 정치 체계를 헌법 조문들과 연결해 풀어준 책이에요. 행정가를 꿈꾸고 있는데 이를 위해 갖춰야 할 헌법 정신도 배울 수 있었고요. 또 관점의 차이가 있는 책을 읽으면서 나만의 입장이나 가치관을 정리한 경험도 있어요. <정치와 법> 시간에 탐구 활동을 위해 활용한 독서인데요. 교과서에는 지방자치에 대해 긍정적인 설명만 나와 있는데 과연 그럴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찾아본 책이 <지방자치가 우리 삶을 바꾼다>와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입니다. 두 책 다 지방분권은 필요하다고 말해요. 다만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는 우리나라의 지방분권이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전공적성 동아리 친구들과 이 책을 읽고 토론을 했는데, 다들 공감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적합한 모델을 고민해보고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보고서 내용은 지방자치와 지역 불균형 해소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지방분권 모델을 고안하는 거였죠. 한두 달간 자료조사를 하면서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제시한 해결 방안으로는 일부 헌법 개정도 있었고, 우리나라 지자체의 재정 자립에 대한 이야기도 담았습니다. 지역 간의 재정 격차가 심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지방분권이 어렵다고 봤거든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 간의 균형과 협력을 위한 위원회 설치 방안도 나왔고요.
Q. 대입 면접이나 논술 등에서 독서 활동을 활용하거나, 읽은 책의 내용을 질문받은 경험이 있나요?
고등학생 때 독서 활동으로 학생부에 기록한 책이 100권 정도 되더라고요. 그중에는 영어 원서도 있고, 읽기 쉬운 책도 있습니다. 꽤 많은 책을 읽다 보니 자기소개서에도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녹여 쓸 수 있었어요. 면접에서도 <정치와 법> 시간에 제출한 지방분권 보고서와 관련해 질문을 받았어요. 대체로 제가 읽었던 책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또는 제대로 이해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견해도 물어보셨고요. 저는 보고서에도 기록했듯이 우리나라 지방분권이 지역 균형 발전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답했고, 면접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Q. 사회 계열 서적을 많이 읽은 것 같은데, 인문이나 자연 계열 책도 접했나요?
물론 사회 계열 서적을 가장 많이 읽었지만, 과학 분야 책이나 영어 원서도 읽었습니다. 원서는 동화부터 시작했어요. 처음부터 어려운 책을 읽긴 힘드니까요. 인문 계열은 철학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나 플라톤의 <국가론> 같은 책이요. 고교 때 <생활과 윤리>를 이수했는데 교과서 내용만으로는 이 사상가가 왜 이렇게 생각하고 말했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그냥 ‘그가 이렇게 말했다. 외워라’인데, 좀 자세히 알고 싶었어요. 물론 처음에는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배경지식으로 삼아 여러 번 읽다 보니 조금씩 읽히더라고요. 나중에는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이해도 되고요. 철학 서적이지만 사회 계열과 연계해서도 배울 게 많았어요.
Q. 인문사회 계열 전공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독서 활동에 대해 조언해준다면?
흔히 책 읽을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고 말하는데, 아침 자습 시간이나 식사 시간, 잠자기 전에 잠깐만 짬을 내서 읽으면 생각보다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시간만 모아도 하루에 꽤 많은 시간이 나오거든요. 물론 처음에는 쉴 수 있는 시간에 책을 읽는다는 게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쉬운 분야나 관심 있는 분야부터 시작하면 좋습니다. 그렇게 습관을 들이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조금 더 두꺼운 책이나 어려운 책도 읽을 수 있어요. 또 고등학생 때 책을 읽는 시간이 아깝다거나 불안할 수도 있는데요. 지나고 나서 보면 깊이의 차이가 분명히 생기더라고요. 이는 탐구 활동 과제나 입시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관련 서적을 열심히 읽은 학생과 인터넷으로 자료 검색만 해서 제출한 학생의 경우 보고서의 질적 차이가 클 수밖에 없거든요. 글쓰기 능력도 키울 수 있어요. 좀 더 정제된 표현을 배우기도 하고요. 평소에 장문의 글을 읽을 일이 없다보니까 긴 글을 읽거나 쓰는 게 힘든데, 독서 활동을 통해 호흡이 긴 책을 읽고 소화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어요.
문준혁
숭실대 신소재공학과 1학년
(서울 선덕고 졸업)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문준혁씨에게 책은 다양한 세계를 알려주는 창구였다. 고교 진학 후에도 독서 활동을 이어가며, 전공 관련 탐구 활동에 활용했다. 특히 고1 신소재에서 고2 에너지, 고3 환경까지 매해 바뀐 활동 키워드는 그 영향을 받았다. 관심 분야를 확장하거나 서로 다른 분야를 연결해온 독서 역량이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수업 과제에서도 발휘된 결과였다.
취재 정나래 기자 lena@naeil.com
Q. 고교 시절 매해 30권 안팎의 책을 읽고, 친구들과 진로 독서 모둠 활동도 한 이유는?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어릴 때부터 책을 가까이했어요. 고교 입학 후에도 3년 동안 매해 과목별로 관련 있는 2~3권의 책을 꾸준히 읽었고, 진로나 관심 분야가 비슷한 친구들을 찾아 ‘진로 활동 조’를 구성해 3년간 독서 토론 활동을 했습니다. 흥미를 느낀 신소재 분야는 고등학생이 혼자 다루기 어렵고, 쉽게 접할 실험도 없었기에 독서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고, 함께 읽으면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권의 책을 읽은 효과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진로 선생님께서 토론의 방향이나 책의 내용과 연계해 생각할 거리 등 피드백을 종종 주셨는데, 그 내용이 수행평가나 실험·토론 등을 할 때 도움이 많이 됐어요.
Q. 독서를 통해 화학에서 신소재로 흥미 분야가 바뀌었다던데,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관심 분야가 바뀐 게 아니라 확장된 거예요. 저는 특히 실생활과 밀접한 화학에 관심이 컸어요. 어릴 때는 일상에서 접하는 화학 현상이나 내가 본 자연 현상의 숨은 화학적 원리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할 때, 중·고등학생 때는 책에서 본 내용을 뉴스·논문이나 내 주변의 현상과 연결해 깊이 이해해보거나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과 연계해 새롭게 활용할 방안은 없을지 궁리할 때 책의 도움을 꾸준히 받았죠. 고1 <통합과학> 시간에 신소재를 알게 됐는데 교과 내용이 많지 않았어요. 아쉬움에 <세계사를 바꾼 12가지 신소재> <신소재,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힘> <신소재 쫌 아는 10대>와 같이 신소재를 다룬 책과 <네이처> 등의 과학 전문지, 논문 등을 찾아보며 주요 신소재의 특징과 현재의 발전 단계를 살폈어요. 인류의 발전에 신소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과 편리함 이면의 문제점이나 신소재가 나아갈 미래 방향까지 알게 됐고요. 화학과 관련이 깊은 데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학문의 성격이 저와 맞고 무한한 가치를 지닌 분야를 연구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신소재를 눈여겨보게 됐습니다.
Q. 그래핀을 활용한 층간소음 감소 방안 탐구 활동에서는 책을 어떻게 활용했나요? 탐구 활동 내용과 함께 알려주세요.
탐구나 실험의 아이디어를 찾거나, 제 가설을 이론적으로 검증할 때 책을 많이 참고했어요. 모교인 선덕고는 해마다 <진로와 직업> 시간에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해보는 탐구 활동’을 하고 그 결과를 교내 학술 대회에 제출해요. 저는 ‘층간소음’을 주제로 선택했고, 시공 단계에 적용할 수 있는 소음 감소 대책을 고민했어요. 찾아보니 아파트는 벽을 타고 소음이 잘 전달되는 벽식 구조로 시공된 비율이 높더라고요. 층과 층 사이 소음 감소 효과가 있는 소재를 넣어보면 어떨까 싶었죠. 그때 그래핀이 떠올랐어요.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 사태 때 도체와 반도체의 성질을 가진 그래핀으로 국산화할 수 있겠다 싶어 특성 등을 파고들었어요. 층간소음을 주제로 잡고 그래핀과의 연결고리를 고민했는데, 책에서 본 분자구조가 떠올랐죠. 내부가 빈 육각형이 연결된 형태거든요. 아파트 벽과 벽 사이에 그래핀을 추가하면, 구조물 강도를 높이면서 분자 내 빈 공간이 소음을 흡수할 것 같아 일반 벽식 구조 모형과 그래핀 활용 모형을 제작해 추를 떨어뜨려 소음을 비교했어요. 하는 김에 그래핀의 뛰어난 열전도성을 바닥 난방에 적용할 수 있을지 궁금해 실험을 하나 더 했고요. 파이프라인 위에 알루미늄·그래핀과 시멘트를 각각 부어 두 개의 바닥을 제작, 온수를 내보내 바닥 위 온도 변화를 측정했죠. 이를 바탕으로 건축 자재로서의 그래핀의 가능성을 발표했죠. 대회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었어요.
그래핀_ 다이아몬드, 흑연처럼 탄소 원자로만 이루어진 탄소동소체 중 하나. 전기·열 전도율이 매우 높고 강도와 탄성이 뛰어나며 무게도 가벼워 ‘꿈의 물질’이라고 불린다. 폴더블폰이 이 그래핀의 성질을 이용한 디스플레이를 활용한다.
Q. 자연 계열은 지식의 변화 속도가 빨라 전공 탐색에 독서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는데?
동의하지 않아요. 저 역시 탐구 과정에서는 책보다는 논문이나 학술지를 보긴 했어요. 고등학생이 새로운 기술·지식을 이해하거나 활용하기는 어려워요. 기본 바탕을 다져야 할 시기죠. 독서는 수많은 학자의 검증을 거친 이론과 기술을, 내 수준에 맞는 언어로 이해할 수 있어 유용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탐색에도 효과적이에요. 간접 경험을 하며 적성이나 흥미를 찾을 수 있고, 혹은 자신의 관심 분야를 폭넓게 적용해보며 깊이를 더할 수 있죠. 제 학생부를 보면 고1은 신소재, 고2는 에너지, 고3은 환경으로 활동 키워드가 매해 달라요. 들여다보면 2020년 탈원전에 따른 전력 부족 우려가 이슈로 부상했을 때 신소재와 관련한 해법을 찾다 주변의 열이나 진동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에너지하베스팅을 파고들게 됐고, 이후 환경 문제 해결책으로 신소재를 다양하게 살핀 것이라 서로 연결됩니다. 실제 이전 학년에서 탐구해본 내용이나 실험을 더 깊게 다뤘고요. 많은 학생이 입시를 고려해 학년이 올라갈수록 분야를 좁혀 전공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려 하는데, 저는 독서를 통해 여러 분야를 연결하며 나만의 시각을 갖춰온 덕분에 그와 다른 방향으로 제 관심과 깊이를 드러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는 대입에서 나만의 경쟁력이 되기도 했죠. 실제 면접에서 독서 관련 질문을 받았고요.
Q. 고등학생 후배들에게 독서 활동과 관련해 조언해준다면?
독서의 힘은 생각보다 커요. 특히 자신에 대해 잘 모르겠다면, 책을 가까이하길 권해요. 얇은 책, 쉬운 책, 재미있어 보이는 책 위주로 읽어보세요. 약간의 시간 투자로 흥미 분야를 알게 될 거예요. 그러다 어려운 책을 접하게 되면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어도 좋고 친구와 나누어 읽어도 도움이 됩니다. 또 전공 분야를 정했다면 다양한 책을 보는 것도 좋아요. 몰랐던 적성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거든요. 일단 시작해보길 바라요.
서윤서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2학년 (강원 고성고 졸업)
‘흥미 없다’고 생각했던 책이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 후에 재밌게 느껴졌다. 수업에서 익힌 대로 관심 가는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교과 토론 수업이나 보고서, 동아리 활동의 소재가 생겼다. 고3 초까지도 전공을 결정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니 고교 생활 전반에 사회 문제에 대한 독서, 탐구 활동이 가득했다. 고교 생활을 바꾸고 대입 관문을 연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구한 독서법’은 대학 공부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취재 정나래 기자 lena@naeil.com
Q. 고교에서 접한 수업이 활발한 독서 활동의 계기가 됐다고 했는데?
고1 2학기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이 전환점이 됐어요. 사실 책을 즐겼던 편이 아니어서 책 선택부터 난관이었죠. 선생님이 주신 도서 목록 중 <파도>에 끌렸어요. ‘너무 멀리 나간 교실 실험’이란 부제가 흥미로웠거든요. 한데 권력의 교묘한 수작에 집단의 휩쓸림과 소수자에 대한 배척, 폭력이 강화되는 과정을 읽어나가며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복잡한 마음이 ‘질문’으로 나타났어요.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학교에서 대부분 다수결로 결정하는데 옳은가’ ‘소수의 의견도 반영할 대안은 없을까’ 등으로요.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친구들과 함께 읽다 보니 서로 생각을 나누며 각자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거나, 나와 다른 해석·시각을 접할 수 있었죠. 자연스레 책에 깊이 빠져들었고요. 그 경험이 너무 좋았어요. 이후 책을 찾아보게 됐고, 스스로 질문하고 메모하며 적극적으로 읽는 습관이 생겼어요. 인상적인 작품을 쓴 작가의 다른 작품이나,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책을 보며 독서의 폭도 넓어졌고요.
Q. 독서를 탐구 활동으로 어떻게 연결했나요?
관심 분야의 책을 읽다 보니, 다른 책을 읽을 때나 관련 교과 수업에서 비슷한 키워드를 발견하면 자연스럽게 독서 중에 했던 질문들을 서로 연결해 고민했어요. 수업에서는 교과 개념과 연계한 궁금증이 많았고, 이게 발표·토론이나 보고서 작성 등의 탐구 활동으로 이어졌죠.
예를 들어 고3 때 아동학대 문제에 관심이 커 <아이들의 계급투쟁> <이상한 정상가족> 등의 책을 읽었어요. 이후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아동학대 실태 보고서’를 써 통계 대회에 출품했는데, 2학기 <사회문제탐구> 시간에 아동학대의 원인과 해법을 다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특히 아동학대를 유발하는 사회 구조, 아동보호 관련 법·행정적 조치와 개선 방향에 초점을 맞춰, 의료 정보 사이트나 법 조항까지 하나하나 찾아봤어요. 자연스럽게 교과 내용과 관심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스스로도 좀 더 수준 높은 공부를 한 것 같아 뿌듯했어요.
또 수업 시간에 흥미로운 개념이나 이해가 잘 안 됐던 내용, 탐구 활동을 하며 관심이 생긴 분야의 책을 따로 찾아보고, 이때 읽은 책들을 다른 학년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에 참고하기도 했어요. 시사 탐구 동아리에서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 대해 발제했었는데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아픔이 길이 되려면> 등을 읽고 가난·질병에 사회 구조가 미치는 영향을 이해한 후여서, 사건 이면의 사회 문제를 파보았어요.
국제사회가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은 배경, 인권의 범위와 우선순위 등을 살핀 덕분에 단순 조사보다 더 풍성한 발제와 토론을 할 수 있었어요. 동아리에서 다른 이슈를 다루면서 아동학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돼 앞서 말한 책을 읽고, 수업에서 또 다른 탐구 활동으로 이어가기도 했고요. 말하다 보니 ‘뫼비우스의 띠’ 같네요. (웃음)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활용한 적도 있어요. 고3 때 선거 연령 하향으로 투표권을 얻은 친구들이 부모님의 의견대로 혹은 무작위로 투표했다는 얘기를 듣고 <파도>가 떠올랐어요. 타인 혹은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행태가 비슷하게 느껴졌거든요. 교내 ‘체인지 메이커’ 활동으로 저는 <청소년이 정치를 꼭 알아야 하나요?>를, 조원들은 <정치, 알아야 세상을 바꾼다> <선거 쫌 아는 10대> 등을 읽고 정치의 필요성과 시민의 역할을 토론했고, 책들의 추천사를 직접 써 교내 도서관에 기증했어요. 고3까지 배워온 것들로 더 깊게 책 내용을 파고든 점, 같은 책을 다른 주제에 접목해본 게 인상적이라 자기소개서에도 써낸 경험이죠.
입시에서도 독서 관련 탐구 활동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면접에서 교수님이 “읽은 전공 관련 도서 중 기억나는 2권을 말해보라”고 하셨는데, 활동과 관련된 책이 기억에 남아 답하기 편했고, 독서 과정에서 스스로 했던 질문이나 탐구 내용도 덧붙일 수 있었거든요. 친구들도 비슷한 독서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어요.
Q. 정보사회학과에 재학 중인데, 전공을 염두에 두고 독서·탐구 활동을 했었나요?
아니요. 저는 고3이 되어서도 지원 학과를 결정하지 못했어요. 너무 고민스러워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제일 재밌었던 과목을 물으시더라고요. <사회·문화>를 꼽았더니, 제 학생부를 뒤져보시곤 ‘사회학’을 추천해주셨어요. 학과 정보를 찾아봤더니, 책을 읽거나 수업을 들으면서 궁금해했던 내용과 맞닿아 있더라고요. 돌이켜보니 전공을 특정하지 못해 과학도서나 인문도서도 많이 봤는데 사회 문제를 다룬 책만큼 흥미롭진 않았어요. 학급 게시판 관리를 맡아 뉴스를 게시하거나 시사탐구 동아리와 캠페인 동아리 활동도 했었고요.
Q. 후배들에게 독서 활동에 대해 조언한다면?
일단 시도해보면 좋겠어요. 특히 완독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으세요. 고등학생 땐 ‘통독’만 했지만, 대학에선 ‘발췌독’을 하고 있어요. 수업을 듣다 궁금한 내용이 생기면, 핵심어를 중심으로 다룬 책에서 주요 내용을 빠르게 훑어요. 이해가 안 가면 전후 내용을 더 보고, 같은 내용을 다룬 다른 책을 찾아 교차해 읽기도 해요. 책은 검증된 이론, 여러 시각을 접할 수 있어 인터넷 검색 결과를 보는 것과는 깊이의 차원이 다른 지식을 얻을 수 있어 좋아요. 발표나 토론에도 유용하고요. 고등학생들도 시간이 부족할 테니, 책의 필요한 내용만 봐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재미를 느끼거나 잘 읽히는 책으로 전공을 찾을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독서와 공부, 탐구 활동은 별개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고, 보조 수단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잘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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